발리 밸리란 발리(Bali)와 배(Belly)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발리에서 걸린 복통, 설사, 구토, 오한 등의 질병을 가리키는 합성어이다. 발리가화산섬이다 보니 석회질의 물로 인한 물갈이가 심하다는 사전 정보쯤은 쉽게 접할 수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샤워 필터는 발리의 필수 여행 용품으로 챙겨가며, 현지에서는양칫물도 생수로 할 만큼 물에 관한 한 민감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식수, 샤워물, 양칫물뿐만 아니라 호텔 내 수영장이나 바다 수영을 비롯해서 해양 스포츠 활동 중에도 부지불식간에 오염된 물에 노출될 확률이 많다 보니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이 '물갈이'란 명목 하에 심한 발리 밸리를 겪는 여행객들이 많다.여기에 현지 비위생적인 음식으로 인한 설사와 구토 증상을 동반하는 식중독, 장염역시 발리 밸리이다.
호텔 조식을 먹고 있던 아침, 아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갑자기 토할 거 같다면서 아침을 안 먹겠다고 한다. 그때 마침, 우리 테이블 바로 앞 누들 스탠드에서 국수를 집어 가려던 한 아이가 팔부위에 뜨거운 육수를 뒤집어쓰고 당황하고 있다. 주변에 부모가 없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이의 팔을 잽싸게 끌고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을 틀어 팔에 대고 한참 화기를 빼주고 있는데, 아들이 화장실로 쫓아와서 "엄마 토할 거 같아요!" 한다. 얼른 조치해 주었더니 조금싹꾸역꾸역 입에 넣었던 조식을 다 게워낸다. 참고 있다가 화장실로 와서 일을 치른 아이를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 반, 장한 마음 반이다.
아들을 진정시키고 테이블로 돌아왔는데 조식을 마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아이 하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입에서부터 바닥까지 묽은 토가 여러 번 수직강하 한다. 직원들이 걸레를 들고 와서 치우는 장면 앞에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질 않는다. 여기저기 발리 밸리를 목격하며 정신없는 토세례로 인해 도저히 식사를 마칠 수가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아이를 눕히고 한국에서 처방해 온 약을 먹였다. 다행이다, 먹일 약이 있어서.
오염된 길거리 음식을 먹인 것도 아니고 샤워 필터에 생수 등 신경을 썼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잦은 수영일까? 생각해 보니 얼음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이가 워낙 찬물을 좋아해서 얼음 먹는 것을 크게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정확한근원을 찾지 못한 채 이것저것 인과관계를 더듬어 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드러기를 앓기도 하고 며칠간 고열과 설사를 심하게 앓아서 여행을 중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그저 가벼운 구토와 설사로 넘어가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발리 밸리를 막기 위해, 아니 조금이라도 증상을 줄이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할지 정리해 본다.
첫째, 지속적인 물조심이다. 반드시 사 먹는 생수를 마셔야 하며, 양치 시에도 호텔에서 매일 넣어주는 생수통의 물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여기에 현지에서 얼린 얼음은 되도록이면 먹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사전에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전략이다.
둘째, 물놀이 후에는 반드시 입을 헹군다. 호텔 수영 및 바다 수영과 해양 스포츠를 즐길 때 수시로 입을 생수물로 헹구는 것이 좋다. 한두 번의 번거로움이몇 일간의 고통보다 낫지 않을까.
셋째, 배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문 음식은 피하도록 한다. 워낙 날씨가 덥다 보니 거리에서 머무는 시간은 어쩌면 음식이 상할 수 있는 가능성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식당에서 바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 안전 상 훨씬 나은 선택인 것 같다.
넷째, 길거리 음식은 삼가는 것이 좋다. 특히나 길에서 파는 음식은 위생 상태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장염이나 식중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되도록이면 주방 시설이 잘 갖추어진 식당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혜이다.
다섯째, 한국에서 복통 및 장염 약을 미리 공수해 갈 것을 권한다. 지사제나 유산균 등 약한 증상이 있을 때 바로 속을 진정시킬 수 있는 약품을 처방받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여행자 보험이 있다고 하지만 현지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