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는 언제나 어렵다. 타고난 말꾼도 아니거니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어색한 숙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괜스레 다른 의견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도 피하는 편이다. 수업을 들을 때면 모든 발표를 접고 그저 가만히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튀지 않고 조용히 묻혀가는 학생, 바로 나였다.매일 학생들 앞에 서는 교사가 되었다니그 자체가 기적이다.
타고난 성향을 거슬러수업이 아닌, 강의세계에 발들인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가 반이었다.연구회를 창립하여 부회장으로 몇년 간 회장님 옆에서 열정 페이를 쏟아붓던 시절이었다. 연구회 파견 강사의 임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고작 3년이 지난 저경력 교사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 앞에서 수업을 논하다니,후들후들한 긴장의 시작이었다.하루는 매번강의 자리로 등을 떠미는 회장님과 단판을 짓기 위해 항변(?)의 질문을 던졌다. 한없이 부족한 모습을 들이밀며 뒤로 빠지고 싶어서,꾸역꾸역 해오던 강의의 부담감을 떨구기 위한 변명과 이유를 찾기위해서였다.
"왜 자꾸 강의하라고 하세요? 강의하면 뭐가 좋아요?"
우매한 자의 눈을 띄우고 바스락 메마른 가슴에 불꽃을 틔운 부싯돌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강의를 하면 성장하게 돼. 수업이 점점 좋아지게 되거든."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강렬하게 꽂혔다.그저 내 것을 나누어 주는일방향의 '베풂'정도로 생각했던 강의가돌아오는 것이 있는 쌍방향의 '나눔'활동이라니.한없이 어설펐기에오늘 보다 더 나아지는 내일을 움켜쥐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또는 교육청에서 의뢰하는 강의를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이어 나갔다. 학교 업무 이외에 원고 준비, 수업 교환, 장거리 출장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도약하고 싶은 마음이 강의에 대한 부담을 덮고도 남았다. 수업에 여러 가지 시도와 변주를 주었고, 완벽하진 않아도 어제 보다 나은 수업력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으로 흘러가길 바랐다. 강의는 성장의마중물이었다.
2021년 1월부터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코로나 쭈그리였던 나를 마주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걸치고 있던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익숙한 곳에서 빠져나와새 옷으로 갈아입듯180도 탈바꿈한모습을 꿈꾸곤 했다. 아쉽게도 눈앞에는 처연한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이 비극적인 현실이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었다. 돌덩이 같이 떨어지는 마음을 끌어다가 매번 교직의 자리로옮겨 놓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교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탈출구는 딱 한 가지, 나 자신을 바꾸는 것 밖에 없었다.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과 변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글과 맞닿았다. 글은꽉 막혀있던 나의 숨통과 가득들어찬 삶의 압을 조금씩풀어주는감압밸브였다.
신기하게도나로부터 도망칠수록 나에게로가까워졌다.빨려들 듯 글에 몰입한 지 1년이 지난2022년 5월,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어리둥절하던 사이에 악몽에서 깨어났다.새로운 문을 하나씩 열어젖힐 때마다 펼쳐진낯설지만 신비로운 세상에 감격스러웠다. 그토록 꿈꿔왔던 180도 변화된모습으로글과 함께세상을 감각하게 되었다.바싹 말라비틀어진 코로나 쭈그리가촉촉하게기경 된 마음밭 위에 책 쓰는 교사로 서있는 과정이 꿈만 같다. 새로운 땅의 이곳저곳을 밟아온 지난 3년 간의 글쓰기는교직 은퇴가 종착역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개안의 시간이기도 했다.
얼마 전 수업이 아닌, 책 쓰기로 선생님들 앞에 섰다. 저연차 교사로 강의라는 바다에서 어설프게 물질을 시작했던 것처럼 딱 3년의 시간이 흐른 후다. '3'이라는 숫자가 겹쳐진 우연, 셋 삼의 단단한 숫자를 포개 안은 글쓰기 강의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동두천 양주 교육 지원청에서 <나도 작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교사 대상 출간을 돕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자기경영노트 성장연구소> 소장님이신 김진수 선생님께서 교육청과 함께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10주 간의 책 쓰기 과정을 통해 선생님들께서 부크크로 개인저서를 출간하는 커리큘럼이다.출간 개관-제목 잡기-목차구성 이후 4 차시본문 쓰기 첫 강의를 의뢰받았다.1학기 말,학생들의 대입 수시 상담을 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기였다.일단, 강의 제목부터 제출하라고 해서 <책 쓰기로 이어지는 글쓰기 비법>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2학기가 되어 원고 작성 시 제목의 거창함을 깨닫고 무한 반복 후회를 거듭했다. 책 한 권은 나올 법만 한 무게의 주제였기에. 비법을 논하기에 3년 차의 그릇이 턱없이 작기도 했다. 책출간 시 요만조만 비슷한 내용이면 강렬한 제목의 끌어당김 효과가 중요하다. 매력적인 그릇으로 담은 내용물이 돋보이게 하는 좋은 사례로 위안 삼기로 마음먹었다. 경험의 범위 내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책 쓰기에 있어서 교사는 직업병이 아니라 직업운을 가졌어요!"
처음 마음먹은 것과 달리 책 쓰기를 부담과 스트레스로 느끼는 분들께 건넨 말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일 읽고 쓰는 텍스트 친화력에서 교사만 한 직업군이 없다. 교사 작가가 많이 탄생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본문 쓰기의 어떤 기법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동기와 북돋움이 되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교직 생활 내내 개인적으로 쥐고 있었던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나누었다. 가장 잘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 중의 하나가 책 쓰기라는 메시지가 개인적인 삶에도 새겨졌다.
언젠가 물 흐르듯 글쓰기 비법을 뚝딱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시간의 축적을 꿈꾼다. 쳇바퀴 같은 삶에서 살짝 빠져나와 책 쓰기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기에 갖게 된 바람이다. 물론,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것도 중요하다. 삶의 파동을 눌러주고 마음의 파편들을 주워 담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기에 심리적, 물리적 안전지대(Comfort zone)는 필수적이다.
안정감이 꽂힌 축이 있으면 컴퍼스가 원을 그리며 돌 때, 일정한 반경을 유지하면서 원의 크기를 점점 크게 확대할 수 있다. 지경을 넓힐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안전지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도 있다. 더 대단하다. 위험을 감수하는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때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삶의 영역과 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초짜의 책 쓰기 강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여정이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