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다. 첫눈.아니, 한 해에 유일하게 두 번이나 찾아오는 겨울이 가져다준 처음 같은 선물이다.2024년 다시 겨울을 알리는 11월 말의 첫눈은 괜스레 반갑다. 이상 기후로 인해 11월 수능도 시험실 난방 없이 치러낸 터라 불어온한기가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모 아니면 도 일까.이상 기후현상을 반영하듯폭설로 찾아왔다.117년 만에 처음 내린 11월의 폭설이라니.
눈 덮인 도로로 인해 여기저기 대중교통 마저 멈춰 선 아침, 등굣길의 아비규환으로오전 8시 전후 경카톡이 분주하다. 학생들과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도로가 꽉 막혀서 이동이 어렵고, 극장 건물은 전기가 나가는 상황까지 발생하여 결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눈 때문에 휴업하는 일은 난생처음 겪는 일인 것 같다.
어제부터 초등학교는 휴교령으로 아침부터 여유를 부리고 있던아들은 엄마도 쉰다니신이 났다.남편과 함께세 가족은 눈놀이를 하러 밖으로 나간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그득하게쌓여있는 눈에 "와!"하고 감탄 연발이다. 이런 눈은 내 평생에 한국에서는 처음이다.
- 아무도 밟지 않은 눈
- 50cm는 족히 넘어갈 만큼 수북이 쌓여있는 눈
-세상의 모든 요철과 높낮이를 평평하게 만들어덮어버리는 눈
- 던져지는 눈덩이가 산산이 조각나서 내동댕이 쳐지지 않도록 보드랍게 폭 안아버리는 두께의 눈
- 가족들과의 시간을 허락해 준 포근한 눈
아들은 생전 처음으로 깊이감있는 눈과 혼연일체가 되어 뒹군다. 뛰어가 다이빙을 해도 아들의 무게를 폭신하게 받아내는 두꺼운 눈의 완충력에 옷을 갈아입고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놀게 했다. 또 언제 이런 눈을 만날까 싶다.한 스쿱 두 스쿱 뜰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 녹지 않고 규모 있는 형태감을 유지하는 눈을 나 역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겨울이다. 2024년이 주는 두 번째 겨울. 겨울이 그냥 평년의 겨울 같으면 좋겠다. 너무 따뜻하지도 않고, 심각한 혹한으로 재난 상태로 치닫지도 않고, 그저 적당한 눈과 적당한 기온과 적당한 바람으로 겨울 다운 겨울. 조심스레 지구를 달래고 아껴서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우리가 기억하는 겨울을 그대로 건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