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동남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수산시장'이다. 배를 타고 농산물을 사고파는 삶의 현장, 살아 숨 쉬는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생의 터를 상징하는 곳이다. 호찌민으로 여행지를 정했을 때, 포장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수상시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관광 상품을 뒤적이다 보니 수산시장은 모두 꼭두새벽행이다. 남편이 아파서 이틀을 지워낸 여행 일정에 쉽게 끼워 넣을 수 없다. 타협점으로 찾은 곳은 메콩 델타. 동일하게 물을 매개로 배를 타는 코스이다 보니 적절한 대체 상품이 되어주길 바랐다.
메콩강은 그 길이가 4,200km에 이르는 세계에서 12번 째로 긴 강이라고 한다. 무려 여섯 개의 국가를 통과하는 물줄기로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적시는, 동남아를 가로지르는 거대 젖줄이다. 베트남에서 9개의 갈래로 갈라져 그 모양이 흡사 아홉 마리의 용과 같다고 하여 '구룡(Cuu Long) 강'이라는 지역어로도 불린다. 메콩강 하류지역에 형성된 충적평야가 바로 메콩 델타이다. 관광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베트남 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옥한 식량 창고라고 한다.
호찌민에서 두 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서 직접 마주한 메콩강은 뿌옇고 탁한 기운이 가득하다. 진한 황톳물은 중국의 댐 건설로 인한 하류층의 생태계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양 옆으로 우거진 열대 수풀 사이로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노 젓는 여인이 관광객들을 위해 베트남 고깔모자(non la)를 하나씩 준다. 센스 있다!라고 탄복했는데, 알고 봤더니 하선시 팁을 받기 위한 깜찍 전략이었다.
남부 메콩 델타의 도시 미토에는 선착장이 있어서 배를 타고 여러 개의 섬을 방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코코넛 섬, 유니콘 아일랜드였다. 코코넛은 푸꾸옥에서부터 매일 같이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터라, 그 기능과 용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단단한 겉껍질에서부터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과즙(코코넛 워터)과 과육, 그리고 과육과 겉껍질 사이에 거친 지푸라기 같은 껍질 섬유까지,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열대 과실이다.
코코넛 열매를 깨고, 껍질 섬유를 분리해 내는 작업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우선, 단단한 겉껍질을 쪼개어 내면 그 사이로 코코넛 워터가 터져 나온다. 과즙을 따로 받고 난 후, 껍질에 철썩 붙어있는 새하얀 과육은 바로 긁어내어 먹거나 코코넛 오일 혹은 코코넛 캔디류의 재료로 사용한다. 당류를 추가하지 않아도 자연산 단 맛으로 충분할 만큼 당도가 높다. 코코넛 캐러멜, 캔디 등으로 재탄생된 샘플을 현장에서 직접 맛보고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 단맛이 일품이다. 겉껍질과 과육 사이를 둘러싸고 있는 거칠고 질긴 섬유는 실로 만들어 친환경 침구류, 가방과 잡화 등으로 재탄생됨을 새로 알았다. 그저 풍부한 미네랄워터의 원천이라 생각했던 코코넛은 알고 보니 뭐 하나 버릴 것 없는 동남아의 보물이다.
섬의 여기저기에 따사로운 햇살의 매만짐에 존재감을 내뿜은 꽃들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느라, 눈과 마음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여유 가득한 천국 놀음을 한다. 이 아름다운 자연군들을 한국에서는 왜 담지 못했을까. 그래 맞다, 한국은 겨울이었지. 차디찬 겨울을 내려 놓고 따스함을 소환하는 동남아 여행, 잠시 잠깐의 여백이 한 해를 버티는 추억 살이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