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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뽀 사랑

건강과 사랑

by 위혜정 Dec 21. 2023

식품에 유통기한이 있고, 물건에 용 기간이 있듯이 자연계에 속한 모든 것은 수명이 있다. 생이 다하기 전까지 내구성을 살뜰히 챙기며 외부의 도움 없이 몸의 기능이 버텨내어 생의 스위치와 동시에 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꽤나 오랫동안 불편 없이 잘 살아왔다. 신체 내외부의 모든 구석구석이 끊임없이, 그리고 끊김 없이 작동해 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다.


레이싱 경기에서 잠시 잠깐의 질주에도 피트 스톱(pitstop: 급유 및 타이어 교체를 위해 정차하는 것)두어 경주차가 정비될 수 있도록 한다. 전력으로 달리다가 별도의 길(피트 로드:pit road)로 빠져나와 고장 난 부위를 수리하거나 타이어를 교체하고 다시 별도의 길을 통해 트랙으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잘 달리기 위정차 구간이다.  달리기 위해 잘 멈추는 것, 삶의 혜안이다. 잘 멈추기 위해  피트 스톱의 시기와 횟수 등 타이밍을 두고 머리싸움을 하는 것 역시 레이싱 전략다.


일정 기간의 소모품인 차도 이런데, 하물며 수십 년 간 장기 복역의 쉬지 않는 노역을 감당해 온 몸을 잠시 쉬어 재정비하는 것은 이상 것 없는 작업이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기름칠도 해주고 필요시 교체 내지는 튜닝  주, 어찌보면 내 몸에 대한 당연하고도 필요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올 한 해는 그 당연한 절차를 차근히 밟으며 체크리스트 하나하나 지워가 시기인 듯하다. 턱관절로 6개월 간의 치료를 거쳤다. 그러고 나니 이번에 폐를 돌봐야 할 차례가 왔다. 한번 앓은 감기로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두 번의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차도가 없 의사 선생님께서 상급 기관 CT 촬영 의뢰서를 써주신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남편이 호들갑스럽 종합 병원에 근무 중인 후배를 찔러 바로 진료 예약까지 잡아 준다. 집 근처에서 찍으면 되는 것을 먼 걸음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번거로웠지만 나만의 몸이 아닌지라 가족 모두의 안심을 위해 큰 기관에서 정확한 소견을 받기로 했다.


아픈 사람으로 북적이는 종합 병원은 지금까지 질고의 구간을 비껴 나온 삶에 안도하게 하는 숙연함을 준다. 호흡기 내과 역시 환자들로 가득하다. 약속 잡기 어렵다는 교수님의 진료에 다시 한번 감지덕지하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젊은 나이에 괜한  CT 촬영으로 방사선 노출을 권하지 않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폐가 회복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기침이 줄고 있다면 괜찮아요. 여기서 엑스레이 한번 찍으시고 과거 두 차례 찍으신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다시 방문을 해주시면 분석해 보고 필요시에  CT촬영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친절하게 불요한 피복을 삼가도록 해주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감사함으로 체크리스트를 하나 더 지운다. 물론, 한 번의 진료가 더 남았지만 그 정도의 번거로움은 안도 한숨과 기꺼이 교환할 수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더니 아들의 사랑이 준비되어 있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엄마가 보고 싶었지 성사되지 않은 영상통화 흔적 남아있다.


"엄마 폐 괜찮대요?"

"응 별일 없을 거 같아."

"제가 아침에 기도했거든요!"

"엄마 주려고  남겨 놨어요. 냉장고에 있어요. 여기요. 먹어봐요. 진짜 맛있어요."


보자마자 엄마 폐의 안위를 물어봐 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주신 두 개의 젤리 중에 하나를 남겨와서 참고 참다 다는 못 먹고 콩알만큼 남겨 놓았다. 푸하하. 그래도 아들의 마음씀이 고마워 오렌지맛 젤리뽀를 입에 털어 넣었다. 뭐든 엄마 입에 넣어주려는 아들의 따스함에 감동이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맛있는 걸 보면 먼저 먹어보라고 권하고 꼭 찌꺼기라도 남겨 놓는 모습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하 걸 보고 배워서 그래."


언젠가 자신감 있게 내뱉는 남편의 반응이다. 생각지도 않게 허를 찌르는 답에 골똘함을 더해보았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큰 남자, 작은 남자 둘 덕분에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 겹다. 내 몸이 아니니  세밀하게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어려운(?) 다짐을 하게 하는 것도 이들 덕이다. 두 남자를 위해 더 건강해지자.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보물이기에 가꾸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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