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모니터를 보다가 낯익은 장면을 발견했다.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벤트 영상이었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비슷한 무대와 규칙으로,
사람들이 실제 게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괜히 반가웠고, 조금은 뿌듯해졌다.
“여긴 한국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
딸이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한국말 몇 마디 할 줄 아는 걸 은근히
자랑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어디를 가든 “코리아?”라는 말이 먼저 나왔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발음으로 돌아왔다.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한국 식품 코너가 눈에 띄었다.
라면 진열대는 우리 동네 마트보다
종류가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낯선 나라 한가운데서 한글 포장을 마주칠 때마다
이게 뭐라고 괜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말레이시아 항공을 타고 이동하던 날에는
기내에서 익숙한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KL에서는,
우리는 늘 가방 속에
오징어 게임 초대 카드 모양의 카드와
공기놀이 세트를 넣어 다녔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받으면
답례처럼 하나씩 건네기 위해서였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정성껏 찍어 주던 젊은 커플,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 주던 히잡 쓴 여성들,
모스크 앞에서 웃으며 다가와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셔터를 눌러 주던 학생들.
공기놀이 세트를 건네면
대부분 깜짝 놀라며 고마워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들이었다.
어느 카페에서
공기놀이를 보여 달라고 해서 잠깐 해 보였더니
그중 한 명이 불쑥 말했다.
“대박!”
서툰 발음이었지만 정확했다.
그 한마디에 웃음이 터졌고,
우리는 어느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식당에서, 가게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응대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메뉴를 한 번 더 설명해 주거나,
괜히 웃음을 하나 더 얹어 주는 식의 호의.
그 호의가 나 개인에게 향한 것인지,
‘한국’이라는 이름을 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이곳이 조금 더 편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말과 태도를 더 살피게 됐다.
외국에 나오면
사람은 개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나라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 사람’으로 여러 번 불리며
나는 그 사실을 자주 떠올렸다.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받는 호의는
분명 따뜻했지만,
그만큼 나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를
조금 더 의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