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09_Quei Branly Museum
위치 : 파리 (37 Quai Jacques Chirac, 75007, Paris)
설계 : Ateliers Jean Nouvel (Feat, 리움 미술관 설계자)
준공 : 2006 (설계기간 : 1999-2001)
연면적 : 30,000 sqm
용도 : 뮤지엄 (문화 및 집회시설)
프랑스에 간다고 하니 한 친구가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준 곳이 케 브엉리 뮤지엄이었다. 에펠탑, 퐁피두 센터같이 일반적인 건물이 아니어서 기억에 남는 이름이었고, 구글맵에 체크까지 해두었다. 건물에 대해 찾아보는 수고는 들이지 않았지만, 유럽을 제외한 지역(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의 토착 예술품과 유물을 전시하는 뮤지엄이라고 들어서 기대감이 컸다. 답사를 하기 전에는 건축보다 전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었던 것 같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케 브엉리 뮤지엄은 폰트 데 알마(Pont de l'Alma) 역에서 350m 떨어져 있어서 5분 정도를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역에서 내려 뮤지엄 쪽으로 걷다 보면 한 편에는 대지경계선을 따라 유리벽이 서있고, 반대편에는 공원과 센 강이 위치하고 있다. 도로와 면한 경계선 전체가 유리벽으로 막혀있고 중간중간 틈이 있어서 뮤지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유리벽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설치한 아파트 단지에서만 볼 수 있었기에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잘 계획된 조경이 보여서 마치 식물원을 둘러보는 느낌도 있고, 조경에 가려서 건물이 보이지 않기에 안쪽에 내밀한 무언가를 숨겨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역에서 가장 반대편에 위치한 입구 주변에는 수직 정원 벽이 계획되어 있었다. 수직 정원은 디자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환경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야 환경적 관심이 건축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지만, 뮤지엄을 설계하는 1999년부터 이러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수직정원을 지나 유리벽 내부로 들어오니 공원이 나왔다. 살짝 경사진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외부와 시각적으로 차단이 되고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풀과 나무로 인해 자연스럽게 건물보다는 조경에 관심이 가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길을 따라서 걸었다. 붉은 선이 건물로 인도하고 있었지만 공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선과 같은 색으로 보이는 볼륨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뮤지엄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조경의 변화는 건물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상태로 황량한 분위기였지만, 그래서 건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을이 돼서 다시 방문한 뮤지엄은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보석함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조경의 변화와 맞물려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는 건축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렇게 조경영역을 지나 마주친 케 브엉리 뮤지엄은 다양한 크기와 색상을 가진 박스가 나열되어 있었고, 이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완만한 곡선 형태의 기본 매스에 다양한 박스로 볼륨감을 주었다. 저 박스가 내부에서 어떤 공간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티켓을 구매하기 위하여 필로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필로티 아래면은 색조와 채도가 다른 빨간색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축가는 초록색의 보색인 빨간색으로 건물을 디자인하여 조경으로부터 독립된 물체로 인식되도록 의도한 것 같았다. 그래서 조경과 함께 보이는 장면은 그 대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과 조경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빨간 건축으로 인해서 조경이 두드러지고, 울창한 나무 사이에서 붉은 건축이 눈에 띄고 있다. 대비와 조화라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를 함께 써야 한다면 필로티 아래에서 보이는 풍경일 것이다.
필로티 티켓부스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배면을 구경하기 위하여 뒤쪽으로 이동했다. 전면에는 박스가 인상 깊은 입면 요소였기 때문에 배면에는 어떤 디자인일까 기대했지만 특별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남쪽을 향해있는 배면은 햇빛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차향이 전체 면에 계획되어 있었다. 다만 뮤지엄은 온도,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직사광선을 피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열고 닫을 수 있는 차향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은 의외였다. 여타 뮤지엄처럼 창이 없는 디자인을 제안하였다면 이러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문을 열고 닫으면 환기의 측면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축 앞뒤면의 인상적인 입면, 건축과 조경의 오묘한 관계를 살펴보며 생긴 여러 궁금증을 품고 내부로 입장하였다. 바닥의 붉은 선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하얀 매스가 나오고, 이를 따라 돌아가면 입구로 이어진다. 붉은색 매스에 갑자기 하얀 매스가 관입되어서 자세히 관찰했는데, 내부에 들어가보니 지하실 수장고와 연관된 매스였다. 긴 장방형 매스 특정 기능을 충족시킬 수 없기에 티켓 부스부터 입구까지 유기적인 곡선 형태로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였다. 물론 순수한 형태에 무언가 관입된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티켓부스부터 입구까지 들어가는 동선을 만들어내는 등 입체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가볍게 지나쳤다.
건물에 들어가서 바로 뮤지엄으로 이어지지 않고, 아주 길고 구불구불한 램프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하얀 램프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램프 자체에 관심을 갖고 올라가지만, 어느샌가 방향감각도 잃은 채 길을 따라 멍하니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멀리 검은색 입구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적갈색 램프와 계단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건물의 설계 의도에 맞추어 해석을 해보자면, 프랑스에 있던 내가 긴 램프를 따라 새로운 지역(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으로 이동한 것이다. 램프를 통해 뮤지엄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클리셰이지만, 그 길이가 생각보다 길어서 새로웠다. 이렇게 공간이 완전히 달라지는 과정에서 구불구불한 램프는 그 전이과정을 심리적으로 와닿게 해 주었다.
드디어 도착한 뮤지엄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렬한 색감이었다. 건물 외장재료에서도 보였던 붉은 색상이 바닥, 천장, 기둥 등에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부에서는 초록색의 보색으로만 생각을 했는데, 작품을 구경하다 보니 원주민들이 만든 예술작품에서 보이는 강력한 색감과 무척 유사했다. 원초적인 색감을 외부, 내부 모두에 활용하여 뮤지엄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점은 어두운 실내공간이다. 뮤지엄이라고 하면 의례적으로 밝은 공간에 작품이 놓여있어 공간은 배경으로, 작품은 주인공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케 브엉리 뮤지엄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작품들도 어두운 배경 속에 놓여있었다. 여타 뮤지엄이 라이트모드라면 케 브엉리 뮤지엄은 다크모드가 적용되어 있었고,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전시 분위기여서 무척 인상 깊었다. 물론 일부 특별한 분위기의 전시실이 어두운 경우는 보았지만 뮤지엄 전체가 어두웠던 적은 처음이었기에 언제나 밝은 공간일 것이라는 나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티션 벽 디자인도 뮤지엄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고 있었다. 마치 사막에서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은 황토색 파티션 벽은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의자가 되기도 하며 독특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작품보다 뮤지엄 그 자체에 놀라며 긴 동선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돌아다니다 보니 건물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박스가 나열되어 있는 영역에 도착했다. 박스 안쪽을 살펴보니 각각은 하나의 작은 전시관이었고, 박스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박스 내부 공간 자체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박스를 만들어낸 의도가 궁금했다. 설계자는 작품 하나하나는 고유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균질한 공간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맞는 공간을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특히 상설전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케 브엉리 뮤지엄은 작품이 이동할 필요가 없었기에 특정한 작품에 어울리는 전시공간을 제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품 그 자체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처음 보는 유형의 뮤지엄임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문화재 대부분이 19-20세기에 약탈해 온 것이기에 전시를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각기 다르겠지만, 문화재 그 자체를 위한 뮤지엄을 계획하고 그것이 구체적인 공간과 형태로 구체화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위층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내려다본 뮤지엄 내부는 마치 아프리카에 온 것 같았다. 강렬한 색감과 오묘한 파티션 벽, 어두운 분위기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은 양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외부에서 보았던 배면(남쪽)에서 은은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전면(북쪽)에서도 박스 사이로 반사광이 들어오고 있었다. 긴 장방형 매스의 장점을 살려 산책로처럼 전시관을 구성한 점과, 좁은 폭 양쪽으로 은은한 빛을 관입하여 많은 조명 없이도 뮤지엄에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점도 인상적이었다. (뮤지엄에 방문한 날은 남쪽으로도 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만 빛이 강할 때 직사광선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아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케 브엉리 뮤지엄을 둘러보고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았지만 꽤 충격적인 답사였고, 이후에도 여러 번 가보았지만 항상 그 분위기와 원초적 힘은 새롭게 느껴졌다. 건물의 조형이나 콘셉트, 인테리어, 색감 등 다양한 건축적 요소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었지만, 이곳에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뮤지엄은 항상 밝아야만 하는가? 뮤지엄에서 작품이 주인공인가? 공간과 형태는 작품과 어떻게 조응할 수 있는가? 등 예상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한국에서만 살았던 내가 유럽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는데, 케 브엉리 뮤지엄을 통해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유럽보다도 더 궁금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느꼈다는 점도 무척 뜻깊은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