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이치코>
<이치코>
도다 아키히로
언젠가 스쳐간 누군가의 이름이 이유 없이 강렬하게 남을 때가 있다. 얼굴도 목소리도 어렴풋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 영화 속에 차례로 나열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카와베 이치코’는 분명 그런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된장국 냄새를 행복이라 느끼고, 축제에서 파는 야끼소바를 좋아하고, 친구와 케이크 가게를 여는 게 꿈인 평범한 20대. 이 영화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때쯤 ‘카와베 이치코’라는 이름은 그저 그렇게만 떠오르길 바란다. 그녀에게 일어난 비극들은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평범한 영화 속 주인공들 중 하나로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인 만큼 영화의 모든 요소는 이치코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현재를 기준으로 여러 과거를 오가는 회상신은 각각의 시기에 함께했던 특정 인물들과 이치코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회상신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흐릿했던 초점이 맞춰지듯, 영화 초반에 나왔던 의문스러운 사건의 전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치코의 연인인 하세가와가 포기하지 않고 찾아낸 이치코의 조각들이 완성될 때쯤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먹먹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사람들이 모두 위를 올려다 보면 왠지 안심하게 돼” 불꽃놀이가 좋다고 말하며 덧붙인 한 마디에 함축된 이치코의 불안과 위태로움은 관객을 조용히 눈물짓게 만든다.
어느 과거로 가든 여름에 머물러 있는 이치코의 계절은 마치 그녀의 삶을 통째 설명해 주는 것만 같다.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웃는 어린 이치코도, 교복을 입고 땀을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베어 무는 이치코도 모두 매미 소리 가득한 초록빛 아래 살랑인다. 비극이란 주변의 것들과 대비될 때 그 어둠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모든 게 화창한 여름날 이치코에게 일어난 비극이, 너무 이르게 찾아온 단절이, 한계에 다다른 결핍이 모든 걸 무너뜨리지만 여전히 햇빛은 따사롭고 파도는 눈부시게 파랗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콧노래와 고요하게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이치코에게 일어난 일들에 비해 너무나 평화롭기만 하다. 믿을 수 없는 비극보다 잔잔한 평화가 더 잘 어울리는 이치코는 여름과 닮아있지만 그녀의 현실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고 그 간극이 만들어낸 모순이 피부에 와닿을 때면 다시 섬뜩해진다.
행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말하지 못한다.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만이 다시금 행복을 갈구할 수 있다. 따뜻한 된장국 냄새가 풍기는 집에서 가족들과 웃으며 보냈던 행복한 유년시절이 존재하는 이치코였기에 ‘나’로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꿈을 꿀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지켜낸 ‘이치코’라는 이름이 언젠가 그녀를 지킬 수 있길 바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들리던 웃음소리와 다정한 대화가 이치코가 살아갈 이후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결말이래도 웃으며 끄덕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