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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Jan 13. 2024

여섯 살 다운천사, 초등학교 갑니다.



작년에는 빼꼼히 고개만 보이던 고민이 성큼 다가와 새해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고, 초조한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 초조함은 ‘다운증후군’ 딸의 학교 입학이다. 독일은 만 6세가 되면 학교에 입학한다. 딸은 6번째 생일을 맞았다. 느리게 크는 ‘다운천사’는 알파벳을 쓰지 못한다. 첫째, 둘째가 만 6세 때는 알파벳 쓰기 심지어 더하기, 빼기도 했었는데. 그에 비해 딸은 아기 같다. 아직 어린 딸이 애틋하고, 아직 말을 못 하는 안쓰러운 감정이 뒤섞인다.


이 작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선다. 하루에도 수십 번 깊은 한숨이 나온다. 유치원은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딸의 유치원 생활이 눈에 훤히 보인다. 문제가 있을 때면 선생님과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딸을 위해 선택한 특수학교는 통학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딸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볼 수 없다. 만나게 될 선생님이 어떨지, 딸을 잘 보살펴 줄지, 말을 못 하는 딸이 의사 표현을 잘할지. 친구에게 당했을 때 선생님에게 도움 요청을 할 수 있을지, 고집이 좀 있는데 이해받을 수 있을지.


유치원에 도착해서 문은 꼭 스스로 열어야 한다. 만약에 선생님이 열어주면 다시 닫고 연다. 실내화로 갈아 신을 때 실내화를 꺼내주면 짜증을 낸다.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놔야 조용해진다. 혼자 해내는 모습이 대견하지만 만나게 될 학교 선생님 눈에도 대견할까? 한번 시작된 걱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대로 가만 들여다보면 딸에게는 남다른 감정이 있다. 딸은 넘어져 우는 친구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화나서 ‘씩씩’ 대는 친구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인형을 잃어버려 속상해하는 친구에게 인형을 찾아준다. 어쩌면 딸은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잘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눈썰미 있고 마음씨 넓은 선생님을 만나 아이의 숨겨진 모습이 발현되고 있을지도. 다만 조급한 내 마음이 문제다. 같은 학교에 원서를 넣은 딸의 친구는 학교서 연락받았다고 한다. 이미 학교 관계자를 만나 상담도 끝났다고. 내 조급함이 더 꿈틀거렸던 이유다.


두 아들을 학교에 보낸 경험이 있었지만, 딸의 특수학교는 다르다. 첫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처럼 모든 게 조심스럽다. ‘다운천사’ 딸을 낳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차근차근 걸으며 지금까지 왔다. 딸과 나는 또다시 시작될 새로운 모험을 준비 중이다. 아직 사람이 다니지 않아 풀이 무성한 길. 그 길을 딸의 작은 손을 잡고 가보려 한다. 길을 트기 위해 무성한 풀을 잘라내며 상처와 쓰라림이 생겨날 수 있다. 단단하게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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