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존더스 Dec 17. 2023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애들이 학교, 유치원에 가지 않는 토요일. 늦잠을 잘 수도 있지만 새벽에 등이 시려서 깼다. 유독 이맘때면 더 시렸다. 오들오들 떨며 이불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밤사이 수십 개의 카톡이 왔다. 딸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셋째 '다운천사'의 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날에 태어난 '다운천사'는 유독 눈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뽀얀 눈 위에 작은 체중을 실어 꾹꾹 신발 도장을 남겼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차가움에 눈을 찡그렸다. 이번 생일에는 눈이 오지 않고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깬 딸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작은딸의 체온이 따뜻했다. 꼭 끌어안으며 "생일 축하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라며 속삭였다. 개구쟁이 두 아들도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여동생의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트리며 생일을 축하했다. 시끌벅적하게 하루가 시작됐다. 딸을 위해 음식도 준비하고 풍선도 불어야 했기에 마음이 분주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그때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딸은 대문을 열고 버선발로 나갔다.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동생네가 큰 선물을 이고 왔다. 엄마 뒤에 숨은 귀여운 두 조카도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삼촌이 선물을 바닥에 쿵 하고 내려놓자 딸의 눈은 더욱더 초롱초롱했다. 단단한 상자에서 선물을 꺼내려는 딸의 얼굴이 빨개졌다. 상자 안에 몸이 반이나 들어갔다.

거울에 불이 들어오는 연분홍의 예쁜 화장대였다. 딸은 화장대에 앉아 조명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다. 언니의 화장대가 궁금한 사촌 동생은 기웃거리며 함께 하고 싶어 했다.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딸은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서로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지고 나서야 함께 놀 수 있었다. 두 오빠는 용돈으로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신난 딸은 포장지를 박박 뜯었다. 바비인형과 소꿉놀이세트였다. 딸은 두 오빠를 와락 끌어안았다.

딸이 좋아하는 케이크 위에 초를 올렸다.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성악가 아빠와 숙모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양쪽 볼에 빵빵하게 공기를 넣은 딸은 힘껏 초를 껐다. 사촌 동생들도 초를 끄겠다고 난리였다. 다시 초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두 번은 더 반복하고 나서야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오물오물 맛나게 케이크를 먹는 딸의 입 주변에는 흰 수염이 생겼다.

저녁 무렵 남편 핸드폰이 다급히 울렸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표정이 어두웠다.  몇 달 전부터 아프시던 시외할머니 소식일 것 같았다. 남편은 방에서 나오며 “외할머니 돌아가셨어 “ 라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듯 가라앉았다. 첫째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알아챘다. 분위기파악을 못 하는 둘째를 단속했다. 남편은 급히 직장에 연락했다. 그리고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애써 눈물을 삼키는 남편의 등을 쓰다듬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더라도 갑작스러웠다.


우리가 기억하는 할머니 모습은 작년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만 해도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었는데. 밤이 되어도 우린 쉽게 잠들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혼자 한국에 가야 하는 남편. 홀로 남아 삼 남매를 돌봐야 하는 나. 무거운 공기 속에서 딸의 생일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섯 살 다운천사, 초등학교 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