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에게 그러했듯, ‘다운증후군’ 딸에게도 음악, 미술, 수영 같은 다양한 예체능 경험을 주고 싶었다. 느리지만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내 인내심보다도 딸의 이해력과 인지는 더디게 자랐다. 두 아들은 만 6살에 이미 수영도 배우고, 음악 학원에 미술학원도 다녔는데. 딸은 미술과, 음악을 가르치기에는 아직 어렸다.
‘수영은 일대일로 배울 수 있으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증후군’ 엄마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진 수영 선생님이 있었다. 정보를 알아봤지만 대기만 몇 달이었다. 두 아들은 뭐든 쉬웠는데. 딸은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수영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딸이 생기면 발레를 가르치고 싶었다. 분홍색 스타킹에 레이스가 달린 발레복을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주위에서는 ‘다운증후군’이기 때문에 어려울 거라 입을 모아 말했다. 주위의 만류에 마음이 점점 작아졌다. 혼자 조용히 발레학원만 알아봤다. 용기를 내어 발레학원에 등록하지는 못했다. 고민만 하던 때에 거짓말처럼 내 눈앞에 발레 전공자가 나타났다.
한국인 남자친구를 따라 한인 교회에 나오게 된 독일 여학생이었다. 허리까지 땋은 긴 갈색 머리카락이 인상 깊었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가 발레 전공자 느낌을 주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바로 물어보기에는 실례가 될 것 같아 몇 주의 시간이 지나며 친분을 쌓았다. 서로에게 편한 사이가 되고 난 후 질문을 했다. “발레 전공자인가요?” “네, 맞아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순간, 혹시 우리 아이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제 딸은 알다시피 ‘다운증후군’이에요 그래도 발레를 배울 수 있나요?” “그럼요 물론이죠. 매주 딸의 모습을 보면서 몸이 참 유연하다 생각했어요. 발레 하기에 좋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어요”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속으로 ‘야호’라며 쾌재를 불렀다.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며칠이 지난 후 딸을 데리고 발레학원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심장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빠르게 ‘쿵쾅’였다. 얼마나 와보고 싶었던 곳인가. 학원에서 지정된 발레복도 분홍색이었다. 1년에 한두 번 공연을 위해 모든 아이들 발레복이 똑같았다. 부드러운 천으로 매끄럽게 떨어지는 발레복을 딸에게 입혔다. 발레슈즈를 신기는데 꿈만 같았다. 딸은 전신 거울 앞에 ‘빙그르르’ 한 바퀴, 두 바퀴를 돌며 좋아했다.
선생님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레슨실로 들어갔다. 벽면이 다 거울인 레슨실을 처음 본 딸의 눈이 커지며 연신 ‘우와’를 외쳤다. 딸의 첫 발레 수업에 설렜지만 한편 염려가 됐다. ‘이해하며 잘 따라 할 수 있을까?’ 45분 수업 시간 동안 레슨실 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레슨실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다가도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다. 선생님이 부르면 ‘쪼르륵’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딸이 두 팔 벌려 뛰어오더니 폭 안겼다. 딸을 꼭 끌어안는데 이게 뭐라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선생님은 “첫 수업이었지만 비교적 잘 따라왔어요. 가끔 자리 이탈도 했지만 점차 나아질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모두가 안될 거라고 만류했던 발레였지만 딸은 지금껏 잘해 내고 있다. 평소에 옷 입기를 싫어하지만 발레복만큼은 스스로 입는다. 성품 좋은 선생님 덕분에 자리 이탈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집중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딸은 발레학원을 다닌 지 1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한 번의 발레 공연도 있었다. 첫 발레 공연을 성황리에 잘 마칠 수 있을지 마음 졸였다. ‘무대 위에서 자리 이탈하면 어쩌지? 혹여 딸로 인해 공연을 망치면 어쩌지? 귀가 예민해서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막으면 어쩌지?’가 무색할 정도로 딸은 무대를 즐겼다.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자리를 찾아가며 우왕좌왕할 때 딸은 몸을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관중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무대를 많이 경험해 본 것처럼 여유로웠다. 음악이 나오며 순조롭게 발레 공연이 흘러갔다. 하이라이트 동작인 친구들과 함께 돌면서 ‘사뿐사뿐’ 뛰는 순서가 왔다. 나비가 된 듯 ‘나풀나풀’ 뛰어다녔다. 마지막 무대 인사까지 잘 해냈다. 내려오는 딸을 맞이하는데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