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유치원 졸업식이 없고, 졸업장 수여식도 없다. 등원 마지막 날 선생님들이 선물을 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선물은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그린 그림, 만들기, 또는 야외 활동, 현장학습 사진과 기록을 남긴 것이다. 얼핏 보면 선생님이 쓴 육아일기 같다.
15센티미터 되는 두꺼운 파일에 한 장 한 장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아이의 추억을 엿볼 수 있다. 심플했던 두 아들의 유치원 졸업이었다면
'다운천사' 딸의 통합 유치원에서는 졸업 파티가 있었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한자리에 다 모일 수 있는 날에 파티가 정해졌다.
오후 4시가 되어 삼삼오오 직접 만든 음식을 들고 유치원 뜰 잔디밭으로 모여들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유치원에서 준비한 몇 가지의 음식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는 작고 아담한 테이블보가 깔려있고, 그 위에는 예쁜 꽃과 귀여운 소품이 자리 잡았다. 한쪽 벽에는 아이들 이름과 사진이 집게에 걸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꼬꼬마 시절 유치원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 31개월부터 유치원에 다닌 딸의 아가 시절 모습에 몽글몽글했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사진에 담았을 선생님에게 고마웠다.
익숙한 곳에 아빠, 엄마 그리고 두 오빠와 함께한 딸은 신났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딸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선생님, 손을 맞잡으며 웃음 짓는 선생님, 볼록한 이마를 맞대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딸의 투명한 눈동자가 말간 미소를 지었다. 딸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게 느껴지면서 눈앞의 시야가 흐려졌다. 울음 버튼이 눌리면 모두가 울 것 같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선생님의 부름에 흩어졌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선생님은 아이들 눈을 마주 보며 선물을 나눠줬다. 기분이 좋았던 딸은 선생님 목을 감싸 안았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시간이었다. 각자 접시에 음식을 담아와서는 담소를 나눴다. 딸은 자신에게 가장 각별한 라우라 선생님 옆에 앉았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특히 김밥을 좋아하는 선생님은 "김밥을 가져올 줄 알고 기대했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간 내어 김밥을 싸주겠노라 약속했다. 식사가 끝나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후식을 먹었다. 흥이 많은 딸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폴짝폴짝 뛰며 춤을 춘다. 이곳에서도 나설 것 같았다. 역시나 딸은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무대인사를 했다. 선생님들은 흥이 많은 딸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환호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핸드폰에서 만국 공통 노래인 아기 상어를 찾아 틀었다. 박자에 맞춰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은 씰룩 쌜룩 춤을 추며 흥을 뿜어냈다. 모두가 웃음바다가 됐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졸업 파티도 끝났다. 휴가로 앞당겨진 졸업 파티이기에 아직 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아있었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휴가를 떠나는 딸의 친구와 학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언제나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학부모와 허그하며
“Alles Gute” (모든 게 잘되길 바랍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딸은 내일도 친구를 만날 것처럼 평소 인사하듯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이별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모두가 떠난 자리는 허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라본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