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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이사할 때 부엌을 가져간다.

by 베존더스

독일 월셋집에는 대부분 부엌이 없다. 세입자의 사적 공간으로 간주해서, 집주인이 제공할 의무가 없다. 간혹 집주인이 부엌을 해 놓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월셋집에 들어가는 세입자가 부엌을 주문 제작하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직접 조립하고 설치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본인의 부엌이라면 떼서 새집으로 가져가거나 다음 세입자에게 중고로 판다. 학생 시절에 결혼한 우리는 전에 살던 사람에게 부엌을 중고로 샀다. 남편 직장이 생기고 이사 갔을 때는 인덕션은 지인이 쓰던걸 받고, 저렴한 부엌을 샀다.


두 아이가 생기며 이사 간 집에서는 직접 내가 원하는 부엌으로 꾸밀 수 있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부엌 구조에 맡는 가구를 골랐다. 부엌 바닥 색깔과 어울리는지 재질은 어떤지 꼼꼼히 살폈다. 이케아 가구처럼 전혀 조립되지 않은 부엌 가구가 집으로 배달됐다. 남편은 유학 생활하면서 가구 조립에 달인이었다. 설명서를 보며 깔끔하게 조립했다. 부엌 가구에 넣을 인덕션, 오븐, 식기세척기도 손수 설치해 주었다. 남편의 정성이 담긴 누가 쓰던 것도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새것이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최신형 인덕션에 요리하며 콧노래가 나왔다. 식기류는 더 이상 손 설거지가 아닌 식기 세척에서 깨끗이 씻겨 나왔다. 삼 남매 생일 때면 머핀 반죽을 예쁘게 담아 오븐에 구워 냈다.


10년 동안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루 중 제일 많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6월 중순에 이사 가기 위해 부엌을 떼어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처럼 남편은 분리해서 하나하나 켜켜이 쌓았다. 미리 연락해 뒀던 쓰레기 수거 차가 왔다. 차 안으로 부엌은 부서져 들어갔다. 텅 비어진 부엌에는 슥슥 빗자루 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깨끗해진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셋째 딸이 태어나고 이유식, 유아식을 만들어 먹였는데 초등학생이 된 걸 보면. 10년이란 시간이 별거 아닌 게 아니구나. 처음으로 가졌던 내 부엌을 추억에 담았다.


이사가게 될 새집에 부엌을 위해 알맞은 가격대에 부엌을 만들기 위해 부엌 회사만 5곳을 찾아다녔다. 이제까지 우리가 살던 집과는 하우스에 들어가는 부엌의 크기는 큰 차이가 있었다. 처음 간 곳에서 부엌 가구를 고르고, 손잡이까지 골랐다. 싱크대 크기며, 개수대는 네모난 걸 넣을 건지 동그란 걸 넣을 건지도 골라야 했다. 선택 장애가 있는 난 정신이 혼미했다. 쇼핑도 1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나인데 상담만 무려 4시간이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고를 수가 없었다.


이곳은 일단 접어두고 며칠 후 다른 곳을 찾아갔다. 첫 번째로 간 부엌 회사에서 부엌 가구 배치 도면은 나왔으니 그걸 들고 이케아에 갔다. 이케아 상담 딱 1시간만 준다니 다행이었다. 전자기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반비, 설치비를 포함하면 저렴하지 않았다. 이케아는 보류였다. 또 다른 부엌 회사에 갔다. 그렇게 몇 군데를 더 돌고 마지막 5번째에 이르러서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오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부엌 가구 재질과 어울리는 손잡이 조명을 의논하며 골라주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다닌 부엌 회사에서는 샘플을 보여줬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고르는 건 우리 몫이었다. 이곳에서는 여러 디자인의 스튜디오에 세팅된 전자기계도 보여주며 이런 것이 우리 부엌에 들어갈 거라 보여줬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걸 3D로 보여주며 변경 사항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완벽했다. 30프로 세일 가격에 설치비 배송비는 서비스였다. 기쁜 마음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부엌 회사를 왜 이제야 만났을까? 주문 제작 6주 만에 우리 부엌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새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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