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도 새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6월 30일에는 지금 사는 집을 비워야 한다. 완전한 이사는 아니었지만 우선 이삿짐만 먼저 나가기로 했다. 독일 전문 이삿짐센터는 너무 비싸다. 인터넷으로 저렴한 곳을 찾았다. 오전 9시에 오기로 한 사람들이 10시 40분이 되어 나타났다. 늦은 만큼 빨리빨리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시간당 일당을 받는 거라 느긋했다. 31도의 더운 날씨여서 더운 건지 열불 나서 더운 건지 몸에서 열이 치솟았다. 휴대용 선풍기로 급한 불을 끄듯 얼굴에 열감을 식혔다. 시원한 물이라도 들이켜면 좋으련만 전원이 꺼진 냉장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집에 짐은 옮기지만 벽지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사실상 들어가 살기에는 무리였다. 잠은 6월 29일까지 지금 집에서 자야 했다. 짐이 다 빠진 집에는 덩그러니 매트리스만 남았다. 옹기종기 가족이 모여 자야 한다. 둘째, 셋째는 마냥 신나서 매트리스 위에서 방방 뛰지만 상대적으로 사춘기인 첫째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까지 이삿짐 싸는 건 일도 아니었음을 이사 후 다음 날부터 알게 됐다. 지금 집은 사용감이 가득한 생활 때가 곳곳에 있었다. 묵은 때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공사로 먼지가 소복이 쌓인 새집은 털고 닦기를 반복했다. 며칠째 청소만 하다 보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띵띵 부었다. 주먹 쥐는 게 야구 글러브를 낀 듯한 느낌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새집에 세탁기 설치는 이른 감이 있었다. 더운 여름 빨래에 쉰내가 진동했다. 무거운 빨랫감을 낑낑이고 지고 빨래방으로 향했다. 밀린 빨래가 많아 3개의 세탁기를 돌렸다.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잠시 쉴 수 있었다. 그 시간도 잠시 텅하고 세탁기 문이 열렸다. 깨끗이 빨아진 옷들을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 중에 6월 29일까지 버틸 식량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시아 마트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부은 손에는 감각이 없었다. 주차 공간을 찾는다며 6바퀴를 돌았지만 내 차 한 대 세울 곳이 없었다. 소득 없이 빨래방으로 돌아갔다. 바짝 말라진 옷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빨래를 내려놓고 남은 공간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땀만큼 마음도 울고 있었다. 이제 곧 끝날 일이었지만 완성되지 않은 새 집을 생각하니 답답했다.
느리게 크는 ‘다운천사’ 딸을 양육하며 인내심의 길이도 함께 자라났다. 기다림은 자신 있었다. 진행되는 새집을 바라보니 인내심이 짧다는 걸 깨닫게 됐다.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고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사실 울음이 터진 포인트는 핸드폰 충전기에서 비롯됐다. 핸드폰 충전기에 문제가 생긴 건지 충전이 잘 되지 않았다. 배터리에 빨간 표시가 되며 깜빡이는데 이 작은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많은 할 일들에 파묻혀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었던 나에게 쉼을 줬여야 했다. 작은 것에 빵 터져버린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실컷 울고 나니 힘들었던 감정이 조금은 씻겨나갔다.
새집에 들어가는 날 배나 더한 기쁨을 느끼려 이렇게 힘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