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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엄마들도 학부모 회의에서 눈치 싸움을 한다.

by 베존더스


학부모 회의 시즌이 돌아왔다. 각각 학교에 다른 학년의 삼 남매 학부모 회의 날짜가 잡혔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남편과의 팀워크가 중요하다. 첫째 듬직이 학교에는 남편이 가고, 둘째 테디베어 학교에는 내가 가기로 했다. 셋째 ‘다운천사’는 남편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첫째 듬직이는 게잠트슐레 (Gesammtscule)에 다닌다. 이해하기 쉽게 종합학교라 표현하면 될 것 같다. 인문계와 상고가 공존하는 학교다. 독일에서는 대부분 김나지움 (Gymnasium) 인문계에 많이 진학하지만 자기의 적성을 빠르게 찾기 위해 종합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인문계는 공부 위주라면 종합학교는 직업에 대한 경험, 회사 견학, 실습이 함께 이루어진다. 8학년에 현장 견학이 있고, 9학년에는 6주간 실습이 있다. 10학년이 되면 원하는 곳에서 인턴을 할 수 있다. 직업이 아닌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싶은 아이들은 10학년에 입시 준비 반에 들어간다. 13학년에 졸업한다.


8학년이 되니 5학년 새내기 때 보다 학부모 회의 참여도가 적다. 학부모 회의에서 제일 첫 번째 안건은 반을 대표하며 선생님과 학부모들 사이의 순조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반장, 부반장 학부모를 뽑는 것이다. 서로에게 미루며 나서지 않으려 하니 담임선생님은 난처했다고 한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니 거절하지 못하고 남편이 부반장 학부모가 되었다.


며칠 후 ‘다운천사’ 학교에 갔다. 새 학기가 되며 바뀐 교실은 넓어진 쾌적했다. 교실 한편에는 색연필, 가위, 풀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특수한 아이들을 위한 색연필은 손에 잡기 쉽게 굵었다. 다치지 않기 위한 플라스틱의 가위에서 선생님의 배려심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곳곳에 묻어났다. 학부모들이 다 모이고 회의는 시작됐다.


‘다운천사’ 딸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반장, 부반장 학부모 세워야 했다. 특수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돕는 역할이 크다. 반장 엄마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하기로 했다. 부반장 엄마를 뽑아야 하는데 서로 눈치만 살피며 시간만 흘러갔다. 한 반에 10명뿐이니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에는 내 순서가 올 것 같았다. 딸을 위해서라도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 선생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장, 부반장 엄마가 뽑히고 다음 순서로는 아이들 학습에 관한 것을 시작으로 물리치료, 언어치료 등등 무슨 요일에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주었다. 아이들 정서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골든레트리버가 오는 날이 있다고도 알려줬다. 선생님은 혹시 강아지 알레르기 여부를 확인했다. 한 시간의 회의는 순조롭게 끝났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둘째 테디베어의 학부모 회의였다. 언제나 적극적이고 안건이 많은 독일 엄마들 사이에서 외국인 엄마는 긴장한다. 유독 둘째 학교에 있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고, 학구열이 대단하다. 독일인 퍼센트가 많은 학군이라 그런 것 같다. 강단에 4학년 학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4학년에 자전거 면허 시험이 있는데 그걸 위해 지역 경찰이 왔다. 필기시험, 실기 시험을 알려주며 헬멧 착용의 올바른 예시, 자전거 라이트는 앞에는 밝은 LED 뒤에는 빨간 등을 달아야 한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20분의 간략한 설명이 끝났다.


5학년부터는 중, 고등학교 종합학교, 인문계로 나눠서 진학한다. 4학년은 입시생과 다름없다. 프로젝트의 화면은 자전거에서 학업 성취도 표로 넘어갔다. 우리가 사는 주 노어트하임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에서의 학업 비교 분석 도표였다. 열성적인 학부모들이 모인 학교라 그런지 성적 수준이 상위권이었다. 인문계에 잘 보내는 학교로 유명한 걸 입증해 주는 자료였다. 도표를 보고 나니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둘째만 유일하게 인문계에 가지 못 할 것 같았다. 고민하는 사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4학년 1학기 주요 수업 내용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번 학기 시험이 중, 고등학교원서 쓰는데 80프로가 반영된다고 한다.


무거운 발걸음은 교실로 옮겨졌다. 반장, 부반장 학부모 투표가 시작됐다. 1학년 때부터 반장엄마를 맡아오더니 올해도 이어가게 됐다.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서 일을 착착 깔끔하게 해 줬던 반장 엄마이기에 모두의 신임을 얻었다. 올해도 잘해주리라는 의미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손뼉 쳤다. 부반장 학부모는 새로 뽑혔다. 졸업여행 안건을 마지막으로 모든 회의는 끝났다.


하루라도 빨리 적성을 찾아야 하는 8학년 첫째 듬직이, 입시생인 둘째 테디베어, 특수학교 ‘다운천사’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 지금 보다 더 극성 엄마가 되어 쫓아다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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