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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 한 한주

by 베존더스

독일에서는 2년에 한 번 자동차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 차도 검사받아야 할 때가 왔다. 월요일 차를 맡기러 갔다. 1시간이면 끝나야 할 검사가 길어졌다.

5년 탄 차는 앞, 뒤 브레이크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필이면 딸의 치과 진료가 있는 날 차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아 한 길로 올곧게 가지 못하는 딸을 데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15분 걸려서 도착했다. 버스 탄다는 기대감에 딸의 눈은 반짝였지만 난 머릿속이 복잡했다. 버스에서 내려 치과까지 걸어야 하는 거리를 계산하니 아찔했다. 14도의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딸을 꼭 붙들고 걷다가 안기를 반복하니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무서워하는 딸을 꼭 끌어안으며 다독였다. 의사 선생님이 꼼꼼히 살피시더니 유치가 빠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올라온 덧니가 있다며 발치를 권했다. 어금니가 썩지 않기 위한 예방치료도 함께였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해야 하는 여부에 대한 설명을 위해 남편과 수요일에 함께 오라고 했다. 생후 5개월에 심장수술을 했던 딸에게 더 이상의 마취 수술은 없기를 바랐다. 마취 수술이라니. 머릿속은 검정 펜으로 낙서하듯 어지러웠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조차 없이 난 화요일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한 달 전 신청 했던 새 여권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왕복 3시간 거리를 오로지 혼자 운전해야 했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데 차에서 주황색 표시등이 깜빡였다. 처음 맞닥뜨린 일에 심장은 심하게 쿵쾅였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 떨렸다. ‘어제 분명 차 검사를 맡았는데 발견하지 못한 건가? ’ 겁이 났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대사관에 도착했다.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을 공부했던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엔진 오일 같다며 긴 막대기를 꺼내 휴지에 닦고 다시 넣었다 빼보라고 알려줬다. 긴 막대기의 끝부분에 기름이 조금 묻어났다. 동생은 엔진오일 번호를 확인하라고 했다. 주유소에 가서 그 번호의 엔진오일을 사서 넣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우선은 여권을 찾으러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파란색 새 여권을 받은 기분을 만끽할 수없었다. 어서 엔진오일을 갈아야겠다는 생가뿐이었다. 맞은편에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살살 운전해서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소에 도착해서 엔진 오일을 찾는데 점원이 찾아주며 친절히 오일도 차에 넣어주었다.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수요일 아침이 되어 남편과 함께 딸의 치과로 향했다. 의사는 수술이 어느 부분에 어떤 치료를 할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치과를 나오는 길 걱정은 더 깊어졌다.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의 딸이 잘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은 목요일까지 이어졌다. 딸의 언어를 위해 필요한 태블릿을 받는 날이었다. 집에서도 병행해야 하기에 부모도 사용설명을 들어야 했다. 학교의 언어치료 선생님, 담임선생님, 태블릿을 지원해 주는 기관의 직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시간가량 설명을 듣노라니 우주에 빙빙 떠도는 느낌이었다.


독일어 학습을 위한 프로그램이 날아가지 않기 위한 잠금장치 주의 사항이 제일 어려웠다. 오후에는 딸의 지원금 신청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집으로 방문했다.

1년에 한 번 딸의 성장과, 병원진료, 먹는 약들은 체크했다. 체크리스트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진다. 정신없는 중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차가 고장 나서 뻗었다면서.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지 못한다고 도와달라는 했다. 남편 눈치를 살피며 남편에게 사회복지사를 부탁하고 자리를 떴다.


급히 조카들을 데리러 갔다. 쪼르륵 세명의 조카들을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고 급히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사회복지사와 마무리를 짓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둘째 데디베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집으로 돌아와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다 보니 둘째 독일어 과외 시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급히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서 줌으로 과외선생님을 연결해 주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던 목요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금요일이 되어서야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둘째 테디베어의 생일 파티가 있는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생일 파티에 필요한 짐만 트렁크에 가득이었다. 집에서 하면 정신없어서 파티 장소를 빌렸다. 테디베어 친구들을 차에 태워서 이동했다. 실내 놀이터 형태로 되어있는 파티장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높은 미끄럼틀로 돌진하더니 순식간에 타고 내려왔다. 범퍼카를 타는데 쾅쾅 광음이 들려왔다. 부딪쳐야 제맛이긴 하지만 교통사고가 날 것 같았다. 범퍼카에서 금방 내려서는 어디론가 또 뛰어갔다. 3시간이 지나서야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간식과 음료수를 먹일 수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진정시켜 각자 부모님에게 데려다주었다. 고요한 집에 들어왔는데 남자아이들 환청이 들려왔다. 따뜻한 물로 씻고 침대에 푹 쓰러지듯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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