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by 베존더스

셋째 딸을 낳은 12월은 유독 추웠다. 눈이 펑펑 내린 탓도 있었지만 내 마음은 유독 더 추웠다. 샛째 딸이 태어날 때 울음소리가 유난히 작았다. 막연하게 딸이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다. 내 품에 안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운증후군'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큰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내가 다운증후군의 엄마라니. 왜 나에게?’ 태열도 유독 심해 더 빨갛게 보이는 얼굴은 더 못생겨 보였다. 셋째 딸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 주지 못했다. 남편 앞에서는 애써 웃어 보였지만 내 마음은 ‘어떡하지?’ 뿐이었다.


밤을 지새우며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막막했다. 내가 막연하게 알던 다운증후군 모습이 떠올랐다. 휴대폰으로 ‘다운증후군’을 검색했다.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그건 내게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태어 난지 3일이 지나 딸을 안고 집에 왔다. 하지만 황달 수치가 높아 또 병원에 가야 했다. 난 온전히 집에서 쉬지 못했다. 암흑 같은 시간을 지내며 한 달을 맞았다. 검사지를 보는 순간 검사지를 들고 있는 내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정확히 21번 염색체가 3개였다. 이제는 어떤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전에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고, 불안한 미래가 기다렸다. 여느 아이 키우듯이 키워야 하는 건지. 특별하게 대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인들로부터 전화나 문자가 왔다. 아들만 둘인 집에 딸이 태어난 걸 축하한다고. 딸의 소식을 모르는 그들에게 받는 축하는 무의미했다. 귀하게 태어난 딸이 ‘다운증후군’ 이예요,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든 연락을 끊고 동굴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갔다. 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하는 게 꺼려졌다. 아들만 둘인 집에 딸이 태어났다며 궁금해하는 그들의 관심이 싫었다.


깊은 동굴 속에서 깊게 더 깊게 들어갔다. 숨죽여 우는 날이 많았다. 울고 또 울었다. 밥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했다. 마시는 물조차 쓰게 느껴졌다. 몸조리를 끝내고 집 밖을 나서서 만나야 할 사람들 앞에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서는 게 두려웠다.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나를 바라볼지. 딸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아닌지. 삼 남매 엄마도 힘든데 ‘다운증후군’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 나를 가엾게 여길까 봐 싫었다. 꼭 그런 시선들과 생각으로 나와 딸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난 지레 겁먹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어두운 상상 속에서 그려내고 있었다.


언제까지 집에 틀어박혀 살아갈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야 했다. 하지만 용기라는 큰 산을 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했다.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없는 나는 점점 더 작아져 갔다. 그런데도, 어두컴컴한 속에서도 내 모성애는 딸에게 향하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이 무슨 죄라고. 당당하지 못한 내가 문제지. 딸을 위해서라도 빨리 마음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 나도 힘을 얻어 앞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어나자마자 딸을 안고 바로 ‘내 딸’이라고 했던 남편이 부러웠다.


엄마인 내가 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딸은 어디서나 당당한 아이로 자라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딸을 사랑해야 예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츰차츰 조금씩 딸을 향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작고 여린 딸을 바라보는데 순간, 하나님이 ‘다희’라는 이름을 주셨지 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름까지 미리 알려주시며 아들이 아닌 딸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딸을 살포시 들어 안았다. 현실을 부정하며 힘들어하던 내 마음을 느꼈을 딸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제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내 마음에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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