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무게를 더해갔다. 축하 전화와 메세시가 쏟아졌지만 딸이 다운증후군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축하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에게 특히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출산 당일, 양가 부모님은 순산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기도 덕이었다. “손자가 아닌 손녀예요.” 아들만 둘인 집에 딸 소식으로 무척 기뻐했다.
몸조리를 도와주러 집에 와 있는 친정 엄마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엄마, 내가 안아보니까 첫째, 둘째 때와는 달라. 그냥 딱 봐도 다운증후군이야.” 엄마는 그다음 날 바로 병원에 왔다. 딸을 찬찬히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닐 거야, 피검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라고 했지만 이미 엄마의 표정은 모든 걸 다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도 오늘 밤 잠은 다 잤구나.
함께 따라온 남동생은 “괜찮을 거야” 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밤새 다운증후군에 대한 검색을 해봤나 보다. 다운증후군 특징 중 하나인 일자 손금은 일반인들에게도 있다며 자기의 왼쪽 손금을 보여줬다. 손금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끼손가락의 마디가 두 개면 다운 증후군이라는데 딸의 손가락 마디는 세 개였다. 귓불이 접혔는지 여부, 귀의 위치가 눈보다 아래 있는지 등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내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나 또한 밤새 검색하며 찾아봤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정확한 전달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이 난리는 아니었을 것 같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다운증후군의 소견이 보이지만 아시아인이라 조금은 헷갈려했었다. 그래서 아닐 거라는 단 몇 프로가 있다면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친정 식구들 누구도 ‘다운증후군’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저 조용히 기도했다. 시부모님께는 남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전했다. “셋째가 다운증후군 소견이 보여 피검사했어요. 결과는 한 달 후에 나올 거예요. “ “그래 기도할게, 너무 염려 마." 라며 전화를 끊은 시부모님 마음도 힘들 것 같았다.
한 달은 더디게 갔다. 피 말리는 기다림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이 됐지만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단 10%의 가능성이 있다면 아니 단 1%라도 있다면 붙잡고 싶었다. 한 달 동안 난 아기를 요리조리 살피며 또 살폈다. 아닐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되었다. 남편이 검사 결과를 들으러 혼자 병원에 갔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 또한 길게 느껴졌다. 한참이 되어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깊이 잠긴 목소리에서 이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남편이 날 꼭 끌어안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맞대. 다운증후군이래.” 라며 나에게 검사결과지를 내밀었다. 고작 종이일 뿐인데,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손은 저절로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는 한동안 부둥켜안고 울었다. 다운증후군이 아니었으면 했던 바람들을 내려놓으며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은 예쁜 딸이 살아내야 할 세상을 생각하니 마음 아파 울었다.
이제까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기다리며 기도해준 시부모님께는 페이스톡으로 연락했다. 자식의 눈물에 마음 아파했다. 더군다나 한국에 있어 함께 아픔을 나누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기도할게." 말씀은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 아들이 고생할 모습에 마음 아파했다. 친정 부모님은 같이 키워 나가자고 했지만 은연중에 '왜 우리 집 일까?'를 내비 치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정작 다희는 잘 자며 잘 지내고 있었다. 큰 아들은 “ 엄마 난 내 여동생이 예뻐” 걱정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부끄러웠다.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됐다. 처음부터 말없이 받아들인 아빠, 있는 그대로 예쁘다 하는 큰 오빠가 있어 다희는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