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아기의 태동이 활발히 느껴지지 않았다. 출산 전 정밀 검사를 했지만 아기는 별 이상 없었다. 첫째의 태동은 움직임이 느렸다. 둘째는 잠도 못 잘 정도로 활발했는데. 아기마다 성향이 다르니 태동 역시 다를 거라 여겼다. 며칠 전 자고 일어난 남편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상기된 얼굴로 “다희”라고 말한다. “다희? 여자 아이 이름이잖아. 뱃속에 셋째는 아들인데… ” “하나님께서 꿈에 ‘다희’라고 알려 주셨어. 아주 선명하게.” 난 남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귀로 흘렸다.
예정일이 다가오며 셋째 맞을 준비를 했다. 잊고 지내던 출산의 고통이 되살아나 온몸이 긴장됐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 이미 아기를 낳은 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예정일이 되어 친정엄마가 왔다. 12월이었다.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평소 눈이 많이 오는 곳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그 해는 계속 눈이 내려 쌓였다.
예정일이 지나도 아무런 진통이 없어 마음이 초조했다. 둘째는 예정일보다 일주일이 지나 태어났다. 독일은 자연주의 출산이라 웬만해서는 유도분만, 제왕절개를 쉽게 하지 않는다. 당시 일주일을 고생한 후 유도분만으로 낳은 둘째의 몸무게는 무려 4,2킬로그램이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셋째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당장 유도분만으로 낳는 게 낫겠다 싶어 병원으로 갔다. 둘째를 낳았던 병원이라 당시 기록이 남아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록을 보고 유도 분만 제를 줬다. 약을 먹은 후 5시간 지나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프고 힘든 고통을 내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진통이 시작되고 분만실에 들어갔다. 1시간 사투 끝에 셋째를 만날 수 있었다. “딸이에요! 아들이 둘이나 있으니 성공했네요!” 딸이라고? 당연히 아들일 거라 생각했던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에 우리 부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간호사는 ‘딸인지 몰랐었냐’며 놀라워했다. 막 태어난 아기의 머리둘레, 몸무게를 재며 간호사가 아이 이름을 물었을 때 우리 부부는 ‘다희’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남편이 “안다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순간, 전율이 온몸을 타고 저릿저릿하게 왔다. 꿈으로 보여주신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12월에 태어난 아기를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한다. 간호사는 나에게 ”딸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네요.”라며 아기를 내 품에 안겨 주었다. 헉. 아이 얼굴이 유독 뻘겠다. 딸이라는데 이렇게 못생길 수 있나. 옆으로 쪽 찢어진 눈에 납작한 코, 유독 볼록한 볼 "다운증후군이야.”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태동이 희미하게 느껴졌었구나 그제야 납득이 갔다. 나의 예상치 못한 말에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말 막 하는 거 아니야 애가 느껴. 어떻게 갓 태어난 딸에게 엄마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딸은… 다운증후군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아들로 알고 있던 아기가 딸이 돼서 나오지를 않나, 게다가 우리 부부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독일에서는 아무리 아이가 다르게 생겼어도 모두 똑같이 축복이라고 한다. “전혀 몰랐어요?” 너무 당황한 나를 바라보며 간호사가 물었다.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남편은 망설임 없이 두 아들 때처럼 딸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였다. 나중에 남편은 자신도 ‘다운증후군’ 느낌을 받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단다. 남편을 보며 난 더 혼란스러웠다. 모성애가 부족한 건가? 내가 문제인 건가? 여러 복합적인 생각들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분만실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첫째, 둘째 때와 달리 태반이 한 번에 빠져나오지 않아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출산 후 30분 내로 태반이 빠지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30분이 조금 지나 태반이 빠졌다.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그때부터 핸드폰으로 다운증후군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이 되어서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다운증후군’의 사실을 몰랐기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우리에게 의사 선생님은 차분히 설명했다. “아기가 황달도 심하고 다운증후군 소견이 보입니다, 아기의 건강상태를 위해 여러 검사를 해야 합니다.” “정확히 다운증후군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피검사를 해보겠습니까?” 우리 부부는 정확히 알아야 아기에게 필요한 걸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피검사에 동의했다. 결과는 한 달 후에 나온다고 했다. 한 달이 1년같이 긴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퇴원 날이 되었다. 아기를 안고 가는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