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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햄 May 25. 2021

내가 엄마 배 속에 없었을 때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태어난 거야

"엄마 뭐해?"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던 엄마에게 달려가 살포시 엄마 무릎에 앉았다.

엄마는 사진을 보고 있었다. 이따금씩 엄마는 사진을 본다. 분명히 며칠 전에도 봤던 사진들인데 또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내가 없다.


"엄마 어디 갔었어? 나는 어디 있어? 엄마 속에 있었어?"

"아니. 아직 엄마 배 속에도 없었을 때야."


혼란스러웠다. 나는 엄마 속에서 나왔다. 그렇게 배워서 알고 있다.

근데 엄마 속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엄마 배 속에 내가 있어요!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은 지금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머리도 길고 예쁜 옷을 입었다.

아빠와 많은 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사진 속 아빠는 엄마에게 뽀뽀를 하거나 안아주기도 했다. 내 앞에서는 엄마한테 그런 표현을 잘 안 하던데. 그런 엄마랑 아빠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내 사진도 보여줘!"


질투가 났다. 싫었다. 나 없이 엄마랑 아빠만 행복해하는 건 반칙이잖아.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내가 없는데도 즐거워 보이는 그 사진들이 싫어서 괜히 심술이 났다.


엄마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다른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사진 속 엄마는 배가 크고 뚱뚱했다. 방금 보았던 사진 속 엄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옷도 예쁘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아 밋밋한 느낌이었다. 왠지 힘들고 졸려 보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랑 아빠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봤던 어느 사진보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이 때는 네가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야."


가끔 엄마는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를 기억하는지 물어보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 속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해서 말을 한다. 폭신폭신하고 따뜻했어!라고.


사진에 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엄마 속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엄마랑 아빠는 행복해 보인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계속해서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이제 설거지를 하러 가야 한다며 핸드폰을 가지고 부엌으로 가버렸다.








엄마 속에 없었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내가 좋아하는 만화 <아기배달부 스토크>처럼 황새가 물어다 준 것일까? 아주 멀리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엄마랑 아빠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태어나서 엄마 아빠 주위를 계속 맴돌았어. 그 '사랑'은 점점 커져갔고 준비가 되었을 때, 엄마의 영양분을 얻어 자라고 있던 태아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야.


내가 아직 엄마 속에 없었을 때. 그때도 나는 엄마 곁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 만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사랑'이란 감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평생 엄마 아빠를 사랑할 거야. 


엄마 아빠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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