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엄마의 책임을 다 해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무엇보다 사랑해 주었다고 믿었는데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분하고 억울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웠던 건 그 물음에 대한 뾰족한 답을 못한 것이었다.
"너, 엄마가 어? 매일 너 쫓아다니면서 낮밤 없이 기사노릇하지, 방 치워줘, 밥 해 먹여.
또 이거 사라 저거 하라 끝도 없는 요구사항 들어주느라 얼마나 애쓰는데, 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구구절절 열심히 늘어놓아 보았지만 그럴수록 뭔가, 구차스럽고 궁색해졌다.
'이게.. 단가?'
이것 말고 결정적인 게 따로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소홀하진 않은 것 같은데 막상 이리 따져 물으니 그동안 뭔가 대단한 걸 해준 게 아닌 것도 같았다.
사실 이 날의 다툼 요인이 뭐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춘기아이와 부모의 다툼이 그렇듯 사소한 일이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감정싸움으로 이어진다. 그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은 아이는 맹렬히 '아무 말'을 생성해 내고 어느새 사건의 주요 콘텐츠는 사라지고 그날의 감정만이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이 날의 그 말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사춘기여도 엄마를 헤아리고 위하는 딸이었기에 다소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이 나를 열받게 하기 위해 던진 것이란 걸 이제 알지만 그 이후에도 가끔 떠오르곤 했다.
'이 자식 참... '
어느 날 나와 다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앞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넌, 참 좋겠다. 엄마가 이리 편하고 만만해서.'
그랬다. 난 아이가 화가 나면 화낼 수 있고 즐거우면 웃을 수 있고 속상하면 투정 부릴 수 있는 존재였다.
사실.. 난 그래본 적이 없었다.
격동의 사춘기 시절에도 엄마나 아빠에게,
'날 왜 낳았냐, 해 준 게 뭐냐'
감히 그렇게 말한 적도 대든 적도 없었다.
그에 반해아이는 자기가 한 번쯤 질러도 수습이 되는 내가 '믿는 구석'의 엄마였던 거다.
자신의 모난 감정 못난 모습 드러내도 받아 주리라 믿는 구석.
음... 이 정도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 싶어 빙긋 웃음이 났다.
물론, 다음 공격은 더 강하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치고 들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사춘기의 못 돼 먹은 아무 말'로 나를코너에 몬다 해도 그때처럼 어버버 하지 않을 자신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