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의 꿈
또다시 시작된 정체불명의 질병이 인류에 괴롭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아이들에겐 바이러스의 반응이 없으나 성인에게 치명적인 듯 성인만 백신 접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아이 하나 없는 조용한 대기실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흥미로운 건, 코로나때와 다르게 접종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호흡기를 통해 전염이 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다들 안전 불감증에 걸렸는지 정확한 사유 파악은 불가능해 보인다. 여하튼 나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계절은 다들 반바지나 다리를 드러내는 치마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으로 예상된다. 하나 한 명 정도는 얇은 긴바지를 입을 만 한데 모두가 다리를 드러낸 의상을 입고 있다. 그 정도로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진 건지 새로운 유행인 건지 파악은 불가능 하나, 나도 반바지를 입고 있는 걸 보면 이 세계에서도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아쉽게도 대기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았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의사와 마주 보고 앉아서 접종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바쁜지 의사는 나와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바로 접종을 시작한다. 그런데 보통의 백신 접종과 다르게 주사기가 아닌 링거를 맞을 때 사용하는 실리콘 튜브관처럼 보이는 얇은 튜브를 꺼내든다. 게다가 튜브의 형태는 쭉 뻗은 직선형 태도 아닌 달팽이 집처럼 돌돌돌 말린 형태다.
백신이 튜브를 통화하며 소용돌이치는 과정에서 무언지 모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냥 말린걸 피기 귀찮은 건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독특한 접종방법을 가진 백신은 투약 위치도 남달랐다. 병원 의료진은 허벅지에 주사를 놓아야 한다면서 내 오른쪽 허벅지에 주사 바늘을 꽂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아, 이제야 모두가 다리가 드러난 의상을 입고 온 이유를 알 것 같다. 분명히 접종 대상자들은 이미 이 특이한 접종방식을 전달받았음이 분명하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여하튼 난 그들의 명령에 고분고분 잘 따랐고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온 바늘에 돌돌돌 말린 형태의 실리콘 튜브관을 연결되는 장면을 덤덤하게 지켜보고 있다. 다행히도 이때까지 따끔한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튜브관 연결이 끝나자 바로 의사는 주사액을 관에 투약하기 시작한다. 백신처럼 보이는 주사액은 소용돌이 모양의 튜브를 따라 뱅글뱅글 돌다가 이내 지구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 스톱한다. 의사는 혀를 끌끌 차며 튜브를 살짝 들어 기울이자 다시 주사액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런 불편함이 있는데도 굳이 소용돌이 모양의 튜브관으로 백신을 투약하는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멍하니 주사액이 이동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드디어 허벅지에 다다르고 백신이 허벅지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주사액이 어찌나 차가운지 다리가 얼어붙을 거 같은 고통에 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고 의료진들이 그런 날 결박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차가운 감각에 몸부림을 치며 아이러니하게도 좀 더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무진장 맞기 싫은 독감 주사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와 함께 맞기로 약속을 한 영향인지, 늦은 저녁 아이의 가래 섞인 기침소리를 들어서인지 영문은 모르지만 꿈에서 스릴 넘치게 백신을 맞았다. 평범한 인생의 한풀이를 꿈에서 하는지 내 꿈엔 비현실스러운 요소가 상당히 자주 섞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지 항상 클라이 막스에 달하면 꿈이 끊겨 버리니 당사자인 나도 뒷 이야기가 상당히 궁금한 경우가 많다.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난리 부르스 치는 소리를 듣고 대기실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접종을 포기하고 줄행랑쳤을 것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