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Myers-Briggs-Type Indicator)는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기반으로 브릭스 모녀가 만들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혈액형으로 성격이나 성향을 나눴다면, 요즘은 MBTI를 많이 사용한다. 16가지 지표로 성격 유형을 나누고 있어 혈액형보다 더 세분화되어있고, 지문을 내가 선택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신뢰가 가는 것이 MBTI가 유행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MBTI를 처음 접했던 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몇 년 전이였다. 그때는 살짝 유행이 되는 듯하다가 금방 사그라들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유행을 타기 전까지 존재 자체도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MBTI 선입견이라는 제목처럼 선입견을 막기 위해 나의 MBTI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가장 마지막 J(판단)와 P(인식)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공개하겠다. 처음 접하고 검사를 했었을 때, 나는 P형이 나왔다. 그 당시에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지금 보다는 확실히 비계획적인 성향이 강했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일단 부딧치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갔다. 당시의 상황과 주변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당시의 나는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새내기 사원이었고, 사수도 없어 혼자서 일을 했다. 계획을 세우려면 뭔가 정보가 있어야 계획도 세울 텐데, 정보가 텅 비어 있으니 맨땅에 헤딩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부딧치고 깨지고 나면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다음부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P형이 우세하게 나오는 게 당연했다.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어떻게 일 하는게 맞는 건지에 대한 기준도 없을 때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P형이냐'라는 물음에는 NO라고 답하겠다. 최근에는 몇 번을 해봤지만, J형이 나왔다. 그 이유 역시도 현재의 상황과 주변 환경의 차이다. 일이든 삶이든 지혜와 경험이 쌓이면 그냥 덤벼들기보다는 신중해진다. 덕분에 어떤 일이든 논리를 가지고 계획을 세우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력이 쌓일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건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대답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경력과 나이가 많아지며 그만큼 나에 대한기대치도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대충 생각해서 대충 답변하면 '생각' 없는 사람이라거나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어릴 때는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기대치가 굉장히 낮았다. 그래서 논리가 좀 부족 해도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라며 면죄부를 부여해줬다.
그 어린 나이를 넘어서면 조금만 논리가 부족 해도 '생각 좀 하고 살아', '정신 좀 차려' 라며 내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한다. 그래서 서서히 계획과 목적을 되도록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 MBTI도 바뀌게 되었다. MBTI는 절대적인 지표가 아니다. 언제 어느 시점에 검사했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지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 MBTI를 절대적인 지표로 보는 사람들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성격의 '큰 틀'정도를 확인하는 데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MBTI는 계속 변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만을 너무 맹신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 맹신이 자기를 계속 틀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내 MBTI는 이러니까 A를 선택해야 해 같은 고정관념에 휩싸인다.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만 고정관념을 가지면 다행이다. 그 고정관념을 다른 타인에게로 옮기며 '넌 이런 사람이야'라며 선을 넘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내가 J형이라는 것을 듣고는 나에게
"넌 개발자랑 안 맞는 거 같아, 다른 일을 구해보는게 어때?"
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건넸지만, 그걸 농담으로 받아들일 만큼 그때 내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회사 일에 대해서 지치고 회의감이 들어 괴로워하던 시기에 들었던 그 말은 심장을 누가 강하게 움켜쥔 것처럼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게다가 점심 식사 자리였고, 테이블에 부서장님과 팀원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웃으며 그 얘기를 떠드는 모습을 보니 입맛이 뚝 떨어지고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분과 좋았던 기억이 훨씬 많았음에도 그 안 좋은 기억 하나가 좋은 기억들을 '컨트롤+X'로 잘라내 버렸다. 그 경험이 안 좋은 기억들이 더 오래가고 기억에 남는다라는 것을다시 상기시켜주었다. 혹시라도 무심코 MBTI를 가지고 타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지적한 적이 있다면, 그 말을 들었을 때 느낄 타인의 심정을 조금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개발자는 많은 상황에 대해서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한 만큼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J형보다는 유연하게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서 대처하는 P형이 유리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농담'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느꼈던 그 기분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안 좋은 기분을 중화시켜주는 효과는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MBTI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애초에 브릭스 모녀가 MBTI를 만든 이유도 남의 성향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향에 맞는 직무를 고르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 MBTI를 남을 안 좋게 평가하고 폄하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 같다. 나 또한 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MBTI를 사용했던 적이 있었기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반성한다. 남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남보다 자신을 더 신경 쓰는 게 앞으로의 인생에 더 이로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