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함과 친절의 상관관계
올블랙이 멋져요!
라며 반려견과 아침 산책 중이던 나를 향해 깔끔하게 차려입으신 할머님이 반려견을 칭찬해주신다. 난 그냥 옆을 지나갔을 뿐인데, 반려견을 향한 칭찬에 괜스레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는데, 가다 보니 버스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원래 내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에서 정류장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버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 대기 중일 때 기사님이 나를 부르더니
"횡단보도 건너세요?"
"네..!"
"그러면 앞으로 와서 내리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넨 뒤 내리는데 생각지도 못 한 친절에 기분이 좋아진다. 서울에서는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면, 경기도로 이사 온 이후에는 너무 흔하게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을 겪는다. 문득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다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기도에 살면 남에게 친절을 잘 베푸는 사람이 되는 걸까? 이내 적당한 이유를 하나 찾았다. 이곳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적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왜 사람들이 친절을 베푸는 이유일까? 인구가 적은 게 무슨 차이를 만들까?
시골에 가면 인심이 좋다거나 정이 많다고 하지 않던가? 그걸 떠올려 보면 너무 쉽게 답이 나왔다. 한적하다는 건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의 범위가 좁아진다. 아침 산책을 할 때도 주위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반려견이 더 눈에 띄었고, 반려견을 보며 '멋지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버스 기사님도 마찬가지로 혼자 있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횡단보도에서 내리지 않을까?라는 사려 깊은 생각도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한적함이 여유를 가져오고 여유가 다른 사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어땠을까? 인구밀도가 높아 한적한 곳이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면, 답답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에만 신경 쓸 뿐 주위를 거의 둘러보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은 그래도 서울에 인접한 도시인지라, 수도권 밖에 있는 도시들보다는 덜 한적하다. 하지만, 서울보다는 한적하다는 그 차이가 사람들에게 보다 더 높은 빈도로 친절을 베풀게 하는 것 같다.
여유가 친절을 베풀게 만든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부자들이 모난 곳 없고 더 친절하다는 속설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한적함이 친절을 베풀 확률을 높인다는 것을 기준으로 추축 해보면, 한적함이 너무 과하면 부담스러운 배려나 친절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사는 곳의 밸런스가 참 좋지 않나란 생각을 해본다. 친절과 간섭 그 사이에 걸쳐있지만, 친절에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개인주의에 묻혀 있고 지냈던,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친절을 이곳에서 다시 느끼고 있다. 오늘의 포근한 날씨처럼 낯선 사람들에게서도 포근함을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