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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감성 Dec 21. 2021

의지하는 것을 줄여야 하는 이유

함께하는 것과 의지하는 것의 차이

어디선가 본 글귀가 굉장히 공감이 되었다. 정확히 문구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쪽의 주장을 따라가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 하는 것이다"


라는 맥락의 글이었다. 그 글을 본 그 순간 한 지인에게 의지했었던 내가 떠올랐고, 찰나의 순간에 많은 기억들을 끄집어내 왔다. 그 지인을 많이 따랐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함께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많이 의지 했었다.



1. 함께하는 것은 동등한 위치여야 한다.

함께한다라는 것은 그 함께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 성립될 수 있다. 여기서, 동등하다는 것은 함께하는 목적에 따라서 바뀐다. 나이, 지식, 가치관, 비전 등등 목적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회사'라면 일반적으로 직급으로 동등해질 수 있다. 직급이 같다면 비슷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급은 최소한의 요건이고 그 밖에도 실적, 업무 수행 능력, 리더십과 같은 여러 요소들이 요건에 포함될 수 있다.


직급으로 급을 나누는 구조는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발언권이나 참여도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회사에서 직급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눠버리면, 많은 회사들이 흔히 주장하는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와 같은 맥락의 문구들은 성립되기가 어렵다. 좋은 의견을 내도 그것을 수용할지 말지 정하는 결정권은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등한 입장이 된다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한 프로젝트를 아는 분과 공동으로 진행하게 되면서 함께 일했던 적이 있다. 이때 나에게는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래밍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이 동등해질 수 있는 요건이었다. 하지만, 함께하자고 했던 그 분과 나의 경험에 대한 차이는 일반인과 아이언맨의 차이 정도였던 거 같다. 햇수로만 쳐도 10년이 넘어갔으니, 경험의 차이는 더욱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변변찮은 무기도 없지만, 아이언맨에게는 튼튼한 갑옷 같은 '정신력'과 온갖 종류의 무기와 같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여러 상황을 지원해주는 자비스 같은 '통찰력'까지 있었다. 아이언맨과, 평범한 내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 리 없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하다 나온 내 의견들은 이미 그 분이 생각했거나, 생각한 후에 버린 것들이었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나무를 보기 보단 숲을 보라는 얘기에 자신감은 계속 떨어지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따르는 일방적인 상황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분도 점점 수동적이 되어 가는 나를 보며, 주도적으로 하라는 핀잔을 늘어놓게 되었다.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만한 경험과 실력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의 내가 가진 지식을 끌어 모아 의견을 내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었다. 결국, 힘의 균형은 늘 한쪽에 쏠리는 때가 많았다.



2. 의지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울 때, 아파서 몸을 가누기 힘들 때와 같이 내 현재 상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주로 의지하게 된다. 물론, 의지 또는 의존이 나쁜 것은 아니다. 막막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기른 상황에서도 계속 의지하려는 게 문제를 만든다. 처음에는 막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이었지만, 상황이 해결된 후에도 의지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의 틀' 안에 갇히게 만든다.


앞서 얘기했던 프로젝트를 할 당시에는 늘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같이 하는 분의 경험이 더 많으니 그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조언으로 나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는 듯했지만,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악영향이 되었다.


스스로 부딪치며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조언을 통해 손쉽게 얻었고, 나를 도와주려던 그분의 선심이 오히려 나에게는 굳이 크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안일함을 심어줬다. 남들보다 부족했던 기본기를 갈고닦고, 고통 속에 오히려 몸을 던졌어야 될 시간을 편안하게 보냈었다.


물론, 나름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모든 시간을 편안하게만 보냈을 리는 없지만, 지나고 보니 시간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분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너무 강했던 게 내 문제 중 하나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드 넓은 초원에 홀로 남겨진 맹수라면, 스스로 자급자족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원에 잡혀온 맹수는 사육사가 매일 끼니를 챙겨주고, 안락한 보금자리까지 마련해준다. 결국, '야생성'을 잃어버리게 된 맹수는 다시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사람에게는 절박함, 조급함, 긴장감과 같은 것들이 몸을 멈추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어 안주하지 않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다 보면 자신을 더욱 강하게 성장시키는 자극제인 긴장감이 줄어들게 된다. 편안함은 나태함을 부르기 마련이고, 그 나태함으로 보낸 시간들이 애매한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 최악은 아닌 말 그대로 애매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면 늘 긴장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능력을 충분히 길러야 합니다. 의지하면 할수록 자신의 능력은 정체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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