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hurdle :
육상 경기 장애물 달리기에 쓰는 목제 또는 금속제의 패널
사람 간의 관계에도 장애물 달리기에 쓰는 허들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스스로 생각했을 땐 허들이 낮고도 높은 사람, 실은 낮고도 낮은 사람이 아닐까.
나의 장점이자 취약성이라고 한다면 섬세함이 느껴지는 낭만이다.
장점이라 먼저 얘기하는 이유는 낭만주의자이기에 매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는 편이라
삶을 조금 더 풍요로운 시선으로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취약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상대가 섬세하고 낭만적이면 쉽게 마음을 연다.
작년 여름 나는 생에 한 번도 받지 않을 것만 같던 심리 상담을 받았다.
나이 대비 수많은 일과 감정들을 겪어온 사람이라 자부했다.
그럴 때 가끔은 미쳐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내 정신은 너무나 온전했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심리 상담이란 걸 받아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단언을 하면 안 돼... 항상 열린 마인드의 방패막이 필요해!)
그때 담당 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재이님은 사람에 대한 경계가 너무 없어요.
실은 재이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게 맞거든요?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이상적이기도 해요.
재이님이 생각하는 대로 사람들이 살아가면 가장 좋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게 현실이고요. 그래서 현실과의 타협점도 찾아야 해요.
그래도 다행인 건요.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럴까요?
인지를 하시는 부분이 명확하다는 점이에요. 그 부분이 참 다행이에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다는 말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나는 실제로 사회에 나와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나,
내게 무해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나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귀결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만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비처럼 날아와 벌처럼 쏜다'라는 표현을 관계에 접목시킬 수 있겠다.
살랑살랑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말들로 내게 나비처럼 다가와
(아니 어쩌면 그들의 말을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나비처럼 해석한 내가)
한순간에 내 마음에 독을 쏘고 가던 수많은 벌과 같은 이들이 떠오른다.
얼마 전 독서모임을 하는데 모 멤버가 얘기했다.
저는 원래 깊고 좁은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인데요.
요즘 들고 있는 크루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피상적인 관계랄까요.
또 한 편으론 그렇게 깊고 좁은 관계가 되려고 싶다가도요. 피곤해요.
그 과정 속에서 제가 상처받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요.
나는 그녀의 말에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저는 비교적 사회에서 좋은 이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곁에 남아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상처받는 게 지레 겁이 난다면요. 피상적인 관계들로 남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허들이 낮고도 높은 사람, 실은 낮고도 낮은 사람이다.
쉽게 다가와 쉽게 나를 아는 척하는 이들에겐 낮고도 높고.
나와 같은 감성과 낭만은 가진 이들에게는 낮고도 낮은 사람이다.
아직은 사람을 잘 아는 편이에요라고 말하기엔 인생을 너무 짧게 살았다.
그리고 어떠한 근거로 사람을 잘 알고 볼 줄 아는 편이에요 말하기도 힘들고.
그럼에도 나만의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허들을 쳐야겠지.
그래야 나와 나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이들, 서로가 다치지 않을 테니까.
너무나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적인 무드가 강하지만, 오늘도 외쳐본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
사랑의 눈길로 먼저 서로를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