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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Dec 10. 2022

작은집

프랑스의 다락방 같았던, 작은집


아들과 나, 남편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합치게 되었고 집을 구하러 다녔다. 아름다운 동네에 낡은 빌라다. 작은 방 두 개, 거실 겸 주방이 있는 작은 집이다. 작은 집이니 조그만 살림살이로 집을 채워야 했다. 냉장고와 식탁, 매트리스, 장난감 수납함을 샀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가전을 고르고 식탁도 4인용이지만 아담한 것으로 샀다. 


허름하고 작은집이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출발이고 소중한 터전이 될 것이었다. 아들 방이 중요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커튼을 제작해서 파는 곳을 알아냈다. 잔잔하고 소박한 프랑스 시골풍의 커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커튼을 제작해서 집안에 다는 일은 어쩐지 엄마나 어른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창문의 가로·세로 길이를 재고, 커튼 봉을 사는 과정은 처음 해보는 일. 줄자로 어설프게 창의 길이를 측정하고 커튼 봉에 시접 부분을 끼우고 그래서 더 짧아질 것을 감안해서 플러스 몇 센티까지 적어 제작소에 보냈다. 동네 커튼 가게에 가면 실측을 해주고, 어울릴만한 커튼을 골라주는 일까지 해주지만 예산을 아껴야 했다. 성가시지만 어른이 되는 일이라 믿었다.  


커튼의 패턴을 고르는 일은 재미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커튼과 침구류를 판매하는 주인장의 서정적인 감성도 마음에 들고, 그 감성만큼 아기자기한 패턴의 패브릭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다. 거실에 달 화이트 린넨 커튼 하나, 아들 방은 특별히 투톤으로 린넨 화이트와 스카이블루 체크로 정했다. 같은 화이트 린넨 이어도 거실의 것은 살짝 힘이 있는 것이고, 아들 방의 화이트 린넨은 성글고 가벼워서 스카이블루 체크와 잘 어우러지는 것이다. 주인장과 상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한 소중한 커튼.  


커튼을 기다리는 날들에는 아들 방을 정리해나갔다. 장난감 수납함에 들어갈 아이 물건을 분류하고 특별히 색감이 좋은 예쁜 인형이나 공룡 피규어와 같은 것들은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놓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그려온 그림들은 하나의 추상화이고, 어른들이 따라할 수 없는 명랑한 색감과 동적인 선들로 채워져 있다. 그 그림들을 벽에 가볍게 걸어본다. 


커튼이 도착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상자를 열어 커튼을 확인한다. 마음에 쏙 든다! 커튼 봉에 커튼을 끼우고 꽤나 무게가 나가는 커튼 봉을 힘겹게 문틀에 끼운다. 어쩌나. 커튼이 짧다. 내 상상 속의 커튼은 우아하게 바닥에 차르르 떨어져야 하는데, 5센티 정도 짧다. 갑자기 키가 큰 아이가 짧아진 바지를 입고 어설프게 발목을 내놓은 느낌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바닥까지 내려다보지 않으면 된다. 그 부분만 빼면 모든 게 마음에 드니까. 커튼 하나로 집안에 온기가 돌고 파리의 다락방 같은 낭만이 더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 전 바쁘게 집안일을 해치우다가도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 자락을 바라보면 황홀했다. 빛이 여러 각도로 린넨 사이를 파고들어 파장을 만들어낸다. 넘실대는 빛과 바람의 조각이 행복감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을 물들이곤 했다.


작은집은 이름처럼 세 식구가 거실 식탁에 모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작았다. 식탁 바로 뒤는 신발장이고 대문이다. 거실에서 바라본 삭막한 회색빛의 대문이 마음에 걸려 페인트칠을 했다.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밝은 벽돌색. 이 또한 어른의 일이었고, 비닐을 사방에 깔고 붙여 아들과 재미나게 색칠을 했다.      


결혼 할 때 강남의 재건축 될 집이라며 리모델링을 해서 들어갔다. 엄마가 준 선물이었고 일종의 혼수 같은 것이었다. 그 안에 들어갈 침대와 가구, 가전과 자잘한 살림살이들 까지 엄마의 취향대로 고른 것이었다. 음악 한다고 세상물정 모르고 무엇 하나 결정하는 법을 몰랐다. 그런 일을 엄마가 모조리 대신 해준 것이다. 그렇게 성사된 결혼과 그렇게 채워진 새 집이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또 다른 출발점은 작은집이 되었다. 스스로 커튼을 고르고, 끙끙대며 커튼을 달고, 아들에게 앞치마를 입혀주며 함께 대문을 색칠했다. 그렇게 나의 집이 되어 갔고, 나의 진짜 모습이 집이라는 공간에 입혀진다는 것을 알았다. 어른의 일이라 여겨졌던 것들을 해나가며 작은집을 나의 것들로 채워나가는 기분이 좋았다. 예산을 아낄 궁리를 하면서도, 작은 사치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새로운 출발이라는 설레임과 아들을 다시 만났다는 감격과 작은 사치들이 일상을 아름답게 채워주었다. 작은 집에서 작은 사치라면 낡은 멋이 느껴지는 빈티지 붉은 빛 대문, 집안에 들어서면 화사한 향으로 나를 반겼던 조말론 디퓨져 그리고 린넨 커튼. 늦은 오후 빛의 광선을 받아 반짝이던 아들 방을 채운 아들의 물건들이 내겐 현대 미술풍의 예술 작품이었다. 


프랑스의 다락방 같았던 작은집이 내게 준 것은 음악 외의 나를 알아가는 일이었고, 그것은 대문과 커튼과 같은 작은 물건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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