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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Mar 16. 2022

‘벨파스트’ 떠나는 이가 남기고 간 그 애틋한 향수

[리뷰] ‘벨파스트’ 떠나는 이가 남기고 간 그 애틋한 향수

영화 ‘나일 강의 죽음’으로 올해 이미 국내 관객들과 한 차례 인사를 나눴던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또 한 편의 신작을 내놨다. 감독의 실제 유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 ‘벨파스트’가 그것. 근래 오락 영화에 집중하던 케네스 브래너의 성향을 떠올리며 큰 기대가 없었던 것도 잠시,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일전의 작품들과는 같은 감독이라고 전혀 믿을 수 없는 새로움과 진중함, 절제와 아름다움이 특별해 놀랍다.

영화 '벨파스트'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벨파스트’(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1969년 여름부터 1970년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온 동네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듯 정겨웠던 벨파스트의 골목과 짝사랑하는 소녀,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던 소년 버디(주드 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9살 소년 버디는 1960년대 후반 종교와 이념 갈등으로 크게 앓던 도시를 사랑하지만, 결국 고사리 같은 손에 꽉 쥐어지는 한 다발 꽃송이만을 남기고 벨파스트를 떠난다.

영화의 결말부터 손쉽게 말해버린 것은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특별하거나 중요하진 않은 이유다. 고향을 사랑했으나 시대의 변화와 아픔에 그리움만을 남기고 떠나야 했던 것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만나봤거나 우리 자신의 이야기기도 하다. 허나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벨파스트’는 시종일관 보는 이의 마음을 간질이는 강한 힘이 있다. 하나는 당시를 바라보는 순수한 버디의 눈빛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일 터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동화 속 환상의 나라로 표현하진 않았다. 긴장 상태가 고조되다 이내 폭동이 만연했던 1960년대 말 북아일랜드를 그렸던 만큼, 평화로운 일상을 그리는 와중에도 그 모습은 언제나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때론 폭력이 적나라하게 들춰지기도 하고, 때에 따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제 사회의 긴장과 침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폭력과 약탈, 혐오와 광기가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영화 '벨파스트'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그럼에도 영화는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거나 두려움을 활용해 몰입을 유도하진 않는다. 되레 절제하고 덜어내는 편이다. 순수한 소년 버디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도시 벨파스트는 분명 위험하지만 소중한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이 더욱 크게 그려진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 짝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풋풋하고 귀여운 감정, 버디를 따라 영화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마음 속 소중한 사진첩을 꺼내보게 한다.

이런 방식은 얼핏 당시 시대상을 가볍게 지나치듯 보이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의 아픔은 행복했던 가족의 단상과 그들이 결국 떠나야 했던 이들의 뒷모습을 통해 더 큰 대비를 이루며 강조가 된다. 깊게 다루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그네들만의 사투가 부질없음을 꼬집는 것이다.

종교에 따라, 이념에 따라, 말투와 억양에 따라 서로를 나누고 혐오하던 그들의 모습이 어떤 지점에선 가엽기까지 하다. 그들의 삶에서 평화와 사랑이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화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과거 회상이나 개인적인 고찰에 머물지 않는다. 지구 반대편 한 섬에서 벌어졌던 일이 2022년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휘감는 것은 버디의 추억이 우리의 역사, 현재와도 맞닿기 때문이리라.

영화 '벨파스트'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한편 영화는 과거를 회상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으레 등장하는 클리셰를 따르지 않고 자연스레 흑백으로 넘어간다. 카메라와 인물의 동선은 연극적인 듯 하면서도 익히 부드러워 재미를 배가시킨다. 흑백으로 촬영해 감각적 재미가 덜해 보일 수 있지만, 진중함과 유쾌함을 오가게 하는 자유로운 화면 구도가 지루함을 앗아간다. 특정 중요 장면에선 어느새 색을 불러와 적절히 환기시키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나무랄 데 없으며 특히 버디를 연기한 주드 힐은 놀랍다. 첫 연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생기는 스크린 너머로까지 와 닿는다. 첨예한 폭력이 연일 이어지는 와중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대사와 와중에도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대사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는 동력이 된다. 특히 버디의 할아버지를 연기한 시아란 힌즈의 툭툭 던지듯 자연스러운 대사들은 마음 깊이 여운을 남긴다.

요컨대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추억을 훌륭히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성을 확보해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의 마음 역시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은 더 없이 따뜻하며, 떠나야만 했던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는 한 없이 반짝거린다. 진실되고 다정하게, 영화는 어린 시절에 대한 낭만을 노래한다.

‘벨파스트’는 제46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을 비롯해 해외 유수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았다. 오는 제94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한 ‘벨파스트’. 행복감과 씁쓸함, 그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 케네스 브래너 최고의 작품이 오스카까지 얻어낼 수 있길 응원한다.

영화 '벨파스트'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기본정보

맑은 날이면 골목에 나와 음악과 함께 춤을 추고 해질녘엔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는, 모두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아끼던 1969년의 벨파스트. 종교 분쟁은 벨파스트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리고, 가족과 짝사랑하는 소녀, 그리고 벨파스트의 골목이 전부였던 9살 버디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제94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음악상(오리지널 송), 음향상까지 총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제75회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개봉: 3월 23일/ 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케네스 브래너/출연: 주드 힐, 케이트리오나 발피, 주디 덴치, 제이미 도넌, 시아란 힌즈/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러닝타임: 98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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