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우선, 시카리오란 살인청부업자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보통 남미에서 활동하는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을 뜻한다. 시카리오라는 제목 답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마약 카르텔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기본기가 탄탄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저력을 기반으로 특별할 것은 없지만 물흐르듯이 흘러간다. 영화의 연출이 수준급이기 때문이리라. 시작 부분에서 오른쪽 하단에서 마치 급습하듯 등장하는 FBI특수부대는 이 영화가 앞으로 2시간동안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선포하듯 예고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체와 총격의 시각적 충격과 전쟁영화같은 음향의 조화. 10분 간격으로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서 관객이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시나리오. 이 모든 것이 이 영화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주특기인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헐리우드 상업영화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영화는 상업성에만 치중하여 메시지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홀로 여성으로서 고군분투하고, 옳아보이는 것과 옳다고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움으로써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 에밀리 블런트의 부당함에 불편해하고 항의하는 굳센 표정이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에밀리 블런트는 이 역할에 잘 어울리며, 에밀리 블런트의 친구로 헐리우드 흑인 민권 주제의 대표 얼굴인 다니엘 칼루야를 캐스팅한 것 또한 이 영화의 주제에 걸맞다. 영화는 멕시코의 미국으로 이어지는 접경도시, 세상에서 가장 치안이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소문난 후아레즈에서 마약 카르텔의 관계자를 미국으로 호송하는 작전으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후아레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를 찍기 이전 사전조사를 위해 후아레즈에 갔었다는데, 그때 여아들이 인신매매단에 의해 납치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후아레즈에서 엄청나게 빈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여 이 영화에도 여아 납치에 대한 묘사가 있다. 바로 후아레즈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라진 아이들을 찾는다는 전단지들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그것은 CIA가 악인 마약 카르텔을 소탕한다며 벌이는 일들은 과연 선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영화에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후아레즈의 어떤 가정의 모습은 처음에는 왜 나오는지 알 수 없다가, 나중에 이 가정의 가장이 CIA작전에 의해 사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필요악은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 그리고 끝내는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FBI의 정의도, CIA의 승리도 아닌 후아레즈에서 일상적으로 총소리를 들으며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특출나지는 않지만 무난하게 기본을 잘 따라갔고, 그러면서도 세계의 현 의제들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영화--FBI와 CIA가 등장하고 마약 카르텔이 등장해서 한 바탕 싸움을 벌이는 21세기형 마피아 느와르--가 언젠가는 헐리우드에서 나올 운명이었고 스토리가 어느 정도 뻔한 것도 있지만, 그것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손에서 탄생해서 깔끔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다.
반면 그의 속편인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아무리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미국식 알탕영화 분위기라지만 그래도 이건 주인공을 에밀리 블런트로 내세워서 구색을 맞추기라도 했지 속편인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알탕영화다. (알탕영화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히트를 쳤다고 옳다구나 돈을 더 뽑아보자, 싶었던 모양인데 그렇다고 듣보 감독을 데려와서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메시지가 있지도 않은 속편을 만들면 어쩌자는 걸까. 각본가만 같은 사람이면 단가? 분위기는 전작과 비슷한데, 전작이 히트를 친 이유가 아마도 21세기형 마피아 느와르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속편인 이 영화는 연출도 평범하기 짝이 없고 시나리오도 모든 것이 예측되어서 지루하다. 이것은 마치 '신세계'로 성공을 맛본 한국 영화계가 옳다구나 하고 같은 캐스팅 같은 분위기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또 찍었다가 쫄딱 망한 형국과 같은 것이다. 영화가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이... 바보들... '신세계'는 너무 남성서사인 나머지 퀴어코드라서 흥한 건데...
게다가 느와르를 찍겠다는 일념 하에 소재에 대한 윤리적 고려가 부족하다.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는 멕시코 밀입국자들의 실상을 민감하게 다루면서 그대로 나타낸 반면, 속편인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에서 멕시코 밀입국자들은 마치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묘사된다. 분위기만 살리면 다인가? 창작물에는 윤리적 고뇌가 필요한 법이고, 윤리적 고뇌를 버리고 상업성만 좇으며 속편을 만들자 과연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에서 나올만한 상업영화가 되었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미국의 청교도적 가족서사는 또 뭐란 말인가. 딸을 지키는 아버지는 헐리우드에서 골수가 나올 정도로 우려먹어서 이제 보기만 해도 지겨울 지경이다.
결국 시카리오 시리즈는 '잘 만든 영화 한 편, 자본이 망친다'라는 불변의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중적인 차별을 받으면서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고민하며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1편의 여성 주인공은 2편에서 딸의 위치에 있는 소녀를 보호하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늑대 남성 주인공으로 변했다. 1편도 그럭저럭인 헐리우드 영화였지만 나름 클리셰도 비틀고 메시지도 전달하려는 노력으로 한 번쯤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 되었다면, 2편은 아예 돈만 벌겠다는 심보가 훤히 보이는 지루한 클리셰 덩어리다. 그런데 뭐? 3편이 또 나온다고? 제발 헐리우드는 한 번 성공한 작품에서 골수까지 빨아먹다 못해 뼛가루를 부셔먹는 행위를 그만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