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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씰리 Apr 22. 2024

개저씨는 뚱뚱해

뚱뚱함을 지적하는 개저씨들 덕분에 여성들의 바디포지티브는 아직도 요원하다




그 대표적 개저씨는 바로 나의 아버지다. 

나는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외모저격도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근황을 나누는 식사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이면 어느 순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노빠꾸 공격을 시작한다. 


근데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똥그래졌냐?
살쪘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가 봐요.
음 스트레스... 그래 니가 고생이 많지. (1초 정도의 얕은 걱정 후)
그래도 여.자.는. 날씬해야지 안 그러냐?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는 몸은 말랐지만 배는 불뚝 튀어나온 전형적인 중년의 올챙이형 몸매였다. 나는 이렇지만 너는 여자이므로 날씬해지는 것이 응당 당연하다는 내로남불의 전형. 나를 향한 저격은 그나마 딸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걱정 정도로 어떻게 포장해볼 수도 있겠으나, 그의 지적은 당연히도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 만나던 본인의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다 좋은데 뚱뚱해서 살만 좀 빼라고 했어 허허허'. 그녀에게 잠수이별 당한 뒤 새로이 나타난 썸녀에 대해서도 '키가 너무 작고 뚱뚱해서 영 마음이 안 가 거참'. 함께 맥주를 마셨던 호프집의 여사장님 두분이 아버지가 근사하게 생기셨다고 칭찬했다고 하자마자 '아- 그 뚱뚱한 여인네들? 껄껄껄!'.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주둥이를 재봉틀로 박아버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으로만 그쳐야 하는 패륜이기에 최근 나는 또 여성들의 뚱뚱함을 지적하는 그에게 '아빠, 그렇게 자꾸 여자들 외모 지적하시면 안돼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표정이 확 굳어지며 나에게 이렇게 받아쳤다. 


너 근데 왜 이렇게 짜증이 늘었냐?

역시 개저씨다. 

전혀 맥락과 맞지 않는 말로 역공격이 들어온다. 

최대한 개저씨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로 설득을 시도해보았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어요.
언제 바꼈는데? 그리고 뚱뚱하단 말이 뭐가 나빠?
난 여인들한테 그냥 귀엽다는 표현이었는데?
(귀여워? 그 말을 듣는 여인들의 귀는 썩고 있는데?) 그런 뜻이라면 더더욱
그런 말 쓰시면 안돼요. 요즘 시대는 그래요.


'당신은 구세대기 때문에 요즘 트렌드를 모른다'는 식의 맥락 없는 눈눈이이 어법으로 말하니 기분은 좀 상한 듯하지만 어느 정도 수긍했다. 그 이후로는 해당 발언을 제법 조심하고 계신다. 


헌데, 가만 보니 그것은 우리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에게 쉽사리 뚱뚱함을 지적하는 개저씨들과, 그들에게 마상을 입는 여성들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바로 나의 엄마! 


중년의 친목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나의 엄마. 그녀는 모임만 다녀오면 짜증이 는다. 모임에서 찍힌 사진들을 보면서 잔뜩 신경질을 내며 외친다. '또! 또 나만 뚱뚱하게 나왔어!!' 


엄마는 살집이 조금 있지만 아담한 글래머 유형의 소유자이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으로 맵시를 잘 낼 줄 아는 여자다. 그녀는 모임에서도 남성 회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그녀를 추종하는 남성 회원들 a.k.a 개저씨들은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며 이렇게 말한다. 


뱃살만 좀 빼애~

엄마는 그 배불뚝이 개저씨들의 주둥이를 뚝배기로 깨버리는 대신 그저 자신의 뱃살을 저주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 하소연을 들어주는 건 내 몫이었다. 


뱃살만 좀 빼고 나면 어쩌겠다는 건가? 그럼 사랑을 해주겠다는 걸까? 

그렇게 해서 사랑을 받는 게 의미가 있는가? (엄마에게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십대 때 만났던 구남친도 그랬다. 그는 늘 내 턱살과 뱃살을 꼬집으며 놀리곤 했는데, 그것이 늘 애정표현과 지적 사이 모호한 경계에 걸쳐있어 어린 나는 혼돈스러웠다. 

물론 지금은 안다. 

애정표현이고 나발이고 다 개소리였단 걸.

그때의 나는 생에 가장 날씬했지만 매일 거울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백번 양보해서 개저씨들의 '뚱뚱해'라는 말이 정말 애정표현인 거라면, 

그냥 예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입에 가시가 돋치고 목구멍이 녹아내리기라도 하는 것인가?


확실히 한국인들은 아직도 상대의 외모를 평가하고픈 욕망이 내장지방처럼 머리에 잔뜩 끼어있다.

그 선두에 있는 것이 개저씨들과 곧 그 나이가 될 개저씨 꿈나무들이다.


엄마는 최근 1년 사이 7킬로그램을 감량하여 훨씬 옷테가 나는 여성으로 업그레이드되었지만 개저씨들은 여전히 아직 뱃살은 보인다며 사랑을 담아 놀려댄다. 

나 역시도 큰 프로젝트를 끝낸 뒤 몇 달 쉬면서 그간의 스트레스 붓기가 빠지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때려부었던 맥주살이 빠져 아버지에게 흡족한 평가를 받았다. ('음~ 아주 보기 좋아.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우웩.)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한 달 만에 만나는 자리에 나가니 나의 붓기 빠진 몸과 독소 빠진 얼굴색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그들의 화들짝에 나는 또 마음 한구석이 심란해졌다. 대체 그 전에 내 상태가 어느 정도였길래... 대체 이전의 나는 어떤 몰골로 그들 앞에 나섰던 것인가...? 또 다시 외모 자학의 굴레에 빠진다.

물론 나의 외모적 자존감이 높지 않기 때문에 외부평가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것일 거다. 하지만 애초에 내 자존감을 낮춘 것이 바로 그 외부평가다. 


아무도 그 누구의 외모도 지적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그러므로, 일단 나부터라도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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