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을 가장 우아하게 먹는 법
해외 살이를 하다 보면 외식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일이 흔한 일상이었다. 아이가 학교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엄마 오늘 점심 메뉴는 뭐야?"였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독일 친구들을 몰고 오는 날이면 이 동양 엄마는 특별한 메뉴를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맘이 컸다. 그 해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이 왔고 스쿨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따뜻한 목도리와 장갑은 필수였을 만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었다. 등굣길에 딸아이가 베프였던 야나가 방과 후 숙제를 같이 하러 집에 올 거라는 말을 미리 해 주었다. 나는 간식으로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호떡을 생각해 냈다. 딸아이의 친구들은 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특별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대를 하는 듯했다.
아이의 아침 등교 후 밀가루와 물, 이스트를 넣고 호떡 반죽을 해서 미리 발효를 해 두었다. 우리 집만의 호떡 레시피는 10개 분량의 양으로 계산된 레시피였다. 자녀가 하나뿐이였지만 나는 손이 큰 엄마였다. 내 어릴 적 내 엄마처럼 닮아 가고 있었다. 잘 발효된 반죽은 따뜻하게 데워진 치즈처럼 존득 존득 탱글 탱글 했다. 딸아이와 야나는 호떡을 만들어보고 싶은 눈빛을 보냈지만 오후의 간식 시간이 요리 시간이 된다면 그날 나의 가사 노동은 힘들게 분명했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면서 2층으로 올라가 숙제를 했다. 나는 잘 발효되어 숨 쉬고 있는 밀가루 반죽으로 호떡을 동글동글 만들어 속이 터지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 호떡 전용 누름개로 눌러 가며 만들었다. 잘 구워지고 있는 호떡 냄새는 1층 주방에서 2층 딸아이 방까지 전달되었다. 이내 계단을 통통 소리를 내며 내려온 아이들은 얌전히 식탁에서 눈웃음을 지으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구워진 호떡을 어떻게 세팅해서 먹일까 생각하다가 한국식으로 종이컵에 넣어 줄까? 두꺼운 종이에 싸 줄까?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집에 종이컵도 두터운 종이도 없었다. 독일인들이 팬케익을 먹듯 작은 접시에 놓아주고 포크를 놓아주니 야나기 나이프를 찾는 게 아닌가? 야나가 요리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한국의 팬케익이라고 설명해서였는지 호떡은 그날 작은 케이크 접시에 세팅이 되어 가장 우아한 요리가 되었다. 따뜻한 호떡 사이로 흘러나오는 흑설탕과 고소한 견과류들은 그녀의 눈이 휘둥그려질만큼 취향저격이었다. 한 개의 호떡을 뚝딱 먹어치우고 추가된 호떡 위에 향긋한 마멀레이드까지 얹어 우아하게 나이프질을 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우아하게 호떡을 먹었던 독일 소녀 야나였다. 그날 이후 야나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그녀가 지어준 호떡 이름 코리안 팬 케이크를 맛나게도 먹어 주었다.
세상에서 호떡을 가장 우아하게 먹던 야나와 딸아이는 지금 성인이 되었다. 독일 시골 마을에 어쩌다 살게 된 동양 아줌마가 해 준 그날의 요리는 야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예쁜 파란 눈동자를 가진 야나의 소식이 많이 궁금한 날이다.
아래 사진은 겨우 카카오 스토리에서 찾아낸 그 날의 추억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