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무야
2008년 딸아이 6세 겨울의 이야기다. 낯선 땅에 살게 된 우리 가족은 trier(트리어)라는 독일의 소도시에 살게 되었다. 고대로마시대 때부터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였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다. 한국에 방문할 때면 트리어 홍보대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도시중 여러 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서 하루에 마음만 먹으면 3개국은 거뜬히 구경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었던 기억이 났다. 여하튼, 나는 자동차 기름을 넣을 때와 커피콩을 사러 다리만 넘으면 룩셈부르크였으니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을 하루에 두 번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딸아이는 한국에서 어린이집만 다녔어서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kindergarten(킨더가르텐) 즉 유치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영어도 아닌 독일어를 쓰는 눈 파란 아이들을 처음 만나게 된 딸아이는 매일 아침 등원길이 공포에 가까웠다. 집에서 공원을 지나 15분 정도만 가면 되는 그곳을 매일 아침 악을 쓰며 울고 또 울었다. 한 달여간 울보가 된 딸아이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독일 소녀 한 명을 딸아이와 짝꿍이 될 수 있게 해 주셨다. 수줍음이 많은 하나(hana)라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마침 그 아이 엄마가 유치원 학부모 대표라는 것이었다. 하나 엄마는 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하나와 플레이 데이트를 시켜주기로 했다. 하나는 윤에게 생긴 첫 외국인 친구였다. 그렇게 둘은 몇 달을 우리 집과 하나집을 오가며 한 동안은 눈빛 교환만으로도 잘 놀았다. 독일어로 된 비디오를 보고 보드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공원에서 놀기도 하며 대화가 별 필요 없는 것들을 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 하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날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우산을 빌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하나의 집은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것이 최단거리 코스였다. 우리는 우산을 하나씩 쓰고 공원으로 향했다.
우산을 받쳐든 하나는 발 밑에 웅덩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옆에서 내 눈치를 보던 윤도 발 장구질을 하며 깔깔대기 시작했다. 하나는 작은 식물들에게 인사, 달팽이 녀석들에게도 인사, 나무들에게도 인사를 하느라 집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 따위는 잊은 듯했다. 하나는 나를 쳐다보며 반복해서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나무야 안녕 고마워'(당케 바움:Danke, Baum!)라는 말을 반복하며 우산대를 좌우로 흔들며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나도 함께 동요를 부르듯 독일어를 따라 하며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집 정원에는 나무가지를 쌓아 만든 오두막이 있었고 1층 거실에는 따뜻한 벽난로가 온기를 가득채웠다. 하나의 엄마 카콜린은 씩씩한 독일 엄마였고 내게 처음 독일식 치즈케익 레서피를 공유해준 나의 첫 외국인 친구였다.
일상에서 자연을 가까이하며 그것들에 대한 감사를 할 줄 아는 하나가 내게 준 선물은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의 키보다 10배는 키 큰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자랐을 그녀가 몹시 궁금한 날이다.
눈 감으면 골목 구석 구석 다 생각이 난다. 해외살이 첫 나라 ,첫 도시 ..... 아름다운 숲과 맛난 모젤강가에 포도가 주렁 주렁,향긋한 모젤와인이 생각나는 곳 그립구나 .. 그 곳에서의 추억 사진이 컴에서는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에는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