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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5시간전

꽁다리 철학

깨끗한 마무리

  오늘이 대서(大暑)라고 합니다. 대서는 24 절기 중 소서(小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있습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가을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도 습도가 높아 에어컨 켠 실내에서 일하다가 밖으로 나가면, 후끈한 열기와 습한 기운이 안경에 희뿌연 김서림을 가져옵니다. 이럴 땐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죠.


  콘 아이스크림은 바삭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게다가 콘을 둘러싼 종이껍질을 제거할 때 깔끔하게 벗겨지는 것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위에서 한번 벗겨내고, 중간쯤 먹다가 한번 더 벗겨낼 수 있으니 참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저는 쓰레기를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 콘을 둘러싼 종이를 모두 벗겨내고 과자와 아이스크림만 손에 쥐고 간편하게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지막 꽁다리 과자까지 다 먹으면 깔끔하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든 증거물이 사라지고 입속에 있는 달콤함만 다음을 기약 합니다.


  6.25 전쟁을 겪고 민족 분단의 아픔을 겪은 이후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아이스크림 콘의 껍질을 벗겨내다가 마지막 꽁다리가 뚝 끊어져서 콘의 완전체가 훼손되었을 때입니다. 맨 마지막에 꽁다리를 먹어야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왠지 속상합니다. 심지어 종이에 꽁다리가 꽉 끼어있어서 빼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릴 때면 학력고사 때 답안지를 밀려 쓴 것처럼 속상합니다. 아이스크림이든 붕어빵이든 꽁다리는 ‘사랑’입니다.




  몇 번의 직장을 옮기면서 입사와 퇴사를 경험했습니다. 입사보다 어려운 것이 퇴사입니다. 마지막에 마무리를 잘하고 좋은 관계 속에서 퇴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모인 어떤 조직에서는 떠날 때가 가장 힘들고 불편합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떠날 때는 평소 내가 했던 행동이나 마음을 두 배이상 쏟아부어야 그나마 좋은 관계 속에서 헤어지게 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속상해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즐거운 척, 얄밉지만 너그러운 척해야 합니다.


  건축에서도 항상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준공이 다가오면 모두가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시공사는 계약된 공기(工期)와 자금순환 문제로 조바심이 납니다. 건축주는 공사비 잔금을 처리해도 문제가 안 생길지, 시공된 건물의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지, 생각지 못한 하자가 어느 곳에서 발생되지는 않을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심리적으로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됩니다. 10개월 좋은 관계가 마지막 2개월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준공이 다가오면 두 배의 마음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꽁다리가 부러지지 않게 하려면 항상 마지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힘의 세기도 조절해야 합니다. 속도도 반으로 줄여가면서 조심스럽게 벗겨내야 비로소 완전한 꽁다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공사가 마무리되고 입주한 건축주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근처 캠핑장에서 숯불 구이를 대접해 드릴 예정입니다. 적당한 날짜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쫑파티가 끝나야 모든 것이 완료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


어때요? 깔끔하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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