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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l 21. 2024

결함 감추기

무엇을 덮을까?

  어느 정도 운동신경이 있으면 첫날에도 중급코스까지 무난히 탈 수 있는 운동이 '스키'입니다. 처음 스키를 배울 때도 그리 어렵지 않게 중급코스까지 맛을 보았으니 만만한 레포츠라고 여길만합니다. 40대 초반에 직장동료와 함께 스키장을 갔습니다. 서너 번째 방문했으니 이젠 초심자라고 이야기도 안 합니다. 오히려 스키보다는 ‘스노보드’를 배워볼까 하는 '건방'까지 생겼습니다.


  특전사 출신의 한 동료는 스키장이 처음인 것 같은데 역시나 기분이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 몇 번 연습하더니 초급코스는 건너뛰고, 중급코스까지 올라갑니다. 확실히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대번에 중급코스까지 올라가 으스대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렇게 서너 번 중급코스에서 넘어지기도 하면서 스키를 타더니 제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 고급코스에 한번 가볼까?" 저는 손사래를 치면서 "안돼! 저긴 눈으로 봐도 저렇게 가파른데 우리 실력으론 못할 것 같은데?" 하물며 중간에 길이 뚝 끊어져서 점핑하는 구간까지 있으니 겁이 날만 합니다. 그래도 대번에 초급, 중급코스를 내달린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를 종용하여 결국 고급코스까지 올라갔습니다.


  하강하기 시작합니다. 예상과 다르게 그는 고급코스에서도 어지간히 내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조심조심 넘어지다 일어서다를 반복하면서 낭떠러지 구간까지 와서는 포기하고, 결국 걸어서 아래까지 내려왔습니다. 고급코스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낭떠러지 구간에서도 점핑을 하는 것이 보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특전사 출신이라 역시 다르긴 다릅니다. 아래쪽에서 그 친구가 먼저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습니다. 하긴 내려오면서 몇 번은 넘어졌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30분이 넘어도 보이질 않습니다. 괜히 걱정이 되던 차에 어렴풋이 저쪽에서 걸어오는 그가 보입니다. 머리는 쑥대밭이 되어 민망한 듯 "아~ 죽는 줄 알았네!" 그래도 대단합니다. 처음 스키를 타고 고급코스를 타고 내려오다니! "와! 그래도 대단하다! 중간에 낭떠러지를 어떻게 멈추지도 않고 뛰었어? 안 무서웠어?" 

"그게 아니라 멈추질 못했어!"



  

  건축공사에서 마감공사는 사실 결함을 감추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일 재료가 아닌 곳이나 연속된 구간의 재료 간 중첩은 시각적으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재료분리대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종류의 몰딩을 통해 어색한 부분을 감추게 됩니다. 바닥과 벽이 만나는 곳은 걸레받이로,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은 몰딩을 통해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접합부에 대한 결함을 감추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벽과 창이 만나는 곳, 유리와 프레임이 만나는 곳은 실리콘을 이용하고, 배관이나 점검구 등은 금속철물로 지저분한 곳을 감추어 버립니다. 도배띄움 시공이라는 방법으로 불규칙한 면을 평탄하게 보일 수 있도록 마감을 합니다. 마감공사는 구조적 기능보다는 시각적 결함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방법으로 진행이 됩니다. 마감공사는 여성들의 메이크업과 같아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틀어진 부분을 바로잡고, 어색한 부분을 교정하는 작업이고 최종적으로는 미려하게 보일 수 있도록 기술적 방법을 동원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구조적 결함은 건축물의 하자로 이어지게 되는데, 문제는 구조적 결함을 시각적 결함처럼 감추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특히 방수공사나 단열공사, 콘크리트 공사는 준공 후에는 볼 수 없는 영역인지라 시공자가 책임감을 갖고 공사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건축물의 품질과 바로 직결되어 있습니다. 장마철에 물난리가 나서 지하주차장 천정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꺼져서 싱크홀이 생기고, 교량이 끊어지고 하는 것들이 구조적 결함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도록 덮었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하자(瑕疵)라는 말은 '얼룩진 흔적이나 흠'을 말합니다. 병들어 기댈 녁(疒) 자가 부수로 사용된 것을 보면 느낌이 확 다가옵니다. 하자는 건물이 병이 난 거죠. 병들었으니 처방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낫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시각적 결함을 보완하는 마감'이나 '하자로 이어지는 구조적 결함'은 모두 덮었을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마감은 덮으므로 예뻐지고, 하자는 덮으므로 병들게 됩니다. 스키를 탈 때 초급이나 중급에서의 제동(制動) 기술은 미미하지만 고급코스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적절한 제동은 스키를 즐길 수 있어도, 과한 제동은 스키를 멈추게 합니다. 제동을 걸지 못하면 추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덮고 무엇을 덮지 말아야 할지의 선택에 따라 ‘마감’이 될 수도, ‘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건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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