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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l 17. 2024

청바지에 흰 티셔츠

단순한 아름다움

  예쁜 여자 연예인은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만 입어도 화보가 됩니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이나 최근 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의 임수향도 최대한 망가진 모습의 못난이 역할을 해도 타고난 '예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직접 눈으로 보면 뒤에서 '후광'이 비친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은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라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수준의 '멋'은 있게 마련입니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오고 가다 보게 되는 수많은 건축물도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의 평가대상이 됩니다. "와~ 저 건물 멋진데~!", "저 집 너무 예쁘다", "저 건물은 좀 어딘가 어색하지 않아?", "저 아파트는 외벽 색상이 왜 저래?", "오! 산뜻한데?" 다양한 수식어로 감정평가가 이루어집니다. 건축 관련 전문가도 아님에도 그다지 틀린 평가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간혹 난해한 의상을 몸에 걸친 패션모델의 워킹을 보면 '이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시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건축물도 있긴 합니다.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m)에서 그런 경향이 있지만 '난 잘 몰러유~ 유명한 사람이 설계했으니 뭔 뜻이 있겠쥬'하면서 해석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그만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도심을 지나치다 보면 기하학적 형태(geometric design)의 건물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고 배열되면서 다양한 미적요소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기하학적 형태의 건축은 사실 컴퓨터 설계를 이용하지 않고는 쉽지 않습니다. 해체주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Dame Zaha Hadid)'가 설계한 3차원 비정형 건축물 '동대문 역사문화공원'도 어디 하나 반듯이 서 있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형태를 2차원적 설계로 풀어낼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비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공사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우리 같은 소시민(小市民)들은 그러한 기하학적 형태나 해체주의적 건축물은 가져볼 수 없는 '명품 가방'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팬티 한 장 걸치고는 살아갈 수 없듯이, 몇 가닥 남지 않는 대머리 아저씨가 가르마에 정성을 들이는 것이나, 휴가 나온 군인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베레모의 각도에 민감한 것은 '멋'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본성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기능주의 건축에서 말하는 '구조미(構造美)'라는 용어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능주의 건축은 '용도 및 목적에 적합한 디자인을 취한다면 그 조형의 미는 스스로 갖추어진다'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바그너가 “예술은 필요에 따라서만 지배된다”라고 주장한 것과 상응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필요 없는 곳에 돈 쓰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가장 효율적인 공간은 직사각형 평면입니다. 원형이나 곡선이 들어가는 순간 불필요한 공간이 생기거나 공간의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직선과 직각은 효율성이 높은 반면 '재미'나 '멋'은 없습니다. 그래서 '곡선이나 요철'을 더해서 '멋'있는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당연히 공사비용은 증가됩니다. 간혹 길을 걷다 보면 직사각형 건물에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형태로 지어졌지만, 외장재의 질감, 색상, 대비, 비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오! 쫌 멋진데!' 하는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간의 효율성과 낮은 공사비는 물론이고 '아름다움'까지 꿰찼으니 '명품(名品)'을 가질 수 없는 우리로서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현직 건축과 교수라면 학생들에게 이런 과제를 내어 주고 싶습니다.

건물은 직사각형이다. 창은 모두 직각이며 유선형은 없다. 창의 비율과 배치는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마감재의 재료와 색상 그리고 질감을 통해 입면을 디자인하고, 의미 없는 장식과 기능이 없는 형태의 디자인은 제외한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고 다음 주 이 시간에 과제를 제출하고 디자인 의도를 설명하시오.

  단순하지만 매력이 있고, 덧 붙이지 않았으나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으나 단아함이 보이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고 있는 것 같은 건물이 저는 '예뻐'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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