悅樂處
초등학교 2학년, 받아쓰기 시험에서 처음으로 80점을 받았습니다. 보통 10점에서 40점이 평소 점수였고, 두세 번의 빵점도 있었습니다. 빵점을 받았을 때의 수치스러움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최악으로 포장합니다. 가장 불우했으며, 제일 바보 같은 자기를 부각할수록 현재의 자신은 더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어릴 적 ‘빵점’ 이야기는 은근히 현재의 나를 높이려는 심리가 나타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래 봬도 ‘나, 브런치작가야!’하는 ’으시댐‘같은거죠.
다시 80점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사실 그때 시험은 ‘소리 나는 대로 쓰는 받아쓰기 시험’이었습니다.ㅎㅎ 저의 문제는 2학년이 되도록 한글의 받침이 구성되는 원리를 몰랐던 거죠. 답답한 엄마가 한글 과외를 시켰고, 한 달 만에 한글을 깨치게 됩니다.
어느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빌딩관리자가 승강기 내부에 안내문을 붙여 놓았습니다.
엘리베이터 고장 시 열락처
010-****-****
연락처(連絡處)가 아니라 열락처? ㅎㅎ재미있는 상상을 해 봅니다. 열락처를 한자로 쓰면 ‘悅樂處’네! 죽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열락처 아닌가요? ‘열락’은 불교용어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유한적(有限的)인 욕구를 넘어서서 얻는 큰 기쁨. 열예(悅豫)’를 말하는 것이니 열락처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을 뜻한다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닐 듯싶습니다. 승강기가 고장 나면 바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저 세상 ‘열락처’를 안내해 주시니 친절도 하셔라.ㅋㅋ
올 해는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던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였습니다. 비상계엄령에 대통령 탄핵까지 이루어졌으니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역사에 남을 한 획이 그어진 시기입니다. 좋은 꿈을 꾸고 나면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다가도 뒤숭숭한 꿈이라도 꾸면 심란한 마음에 깊은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깨달아진 말씀에 힘을 얻다가도 먼발치 앉아서 기다리는 ‘불안’이 정신을 혼미하게도 합니다.
이번 성탄절엔 공사 현장을 하루 쉬기로 했습니다. 공기(工期)를 감안해서 강행하자는 요구도 들어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예수님도 오시는데
우리도 기쁘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어요?
ㅎㅎ 하루 쉽시다!
그래서, 쉬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연락(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빌딩관리인은 승강기 안에서 ‘저 세상의 기쁨’을 안내해 주었을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기쁨’을 찾는 하늘나라 성도임을 선포하는 한 해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