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에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 정릉으로 이사를 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바로 그 정릉이다. 부모님이 빵 대리점을 지인으로부터 잠시 맡게 된 것이 계기였다. 집은 변변치 않았으나 딸린 방이 있었고, 옆에는 사무실도 있었다. 뒤편으로는 제법 넓은 마당까지 딸려 있었다. 비록 한양도성 4대문 밖이었지만, 내게는 다시 서울 중심으로 들어온 듯한 자리였다.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吉再)
잠시 시 외곽에 머물다가 다시 도심으로 들어온 일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궁성(宮城) 가까이 발을 들인 듯했다. 학교는 가까워졌고, 버스 정류장도 손 닿는 곳에 있었다. 불 꺼진 저녁, 골목에도 가로등 불빛은 따스했고,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어스름 속을 걷는 이들 틈에서야 비로소,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강북의 거리를 좋아한다. 안국역에서 인사동 길을 따라 종로로 나오는 길이 특히 마음에 든다. 종각 쪽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 종로타워가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백화점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새로 들어선 건물도 종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예전엔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이 나의 단골 나들이 코스였다. 날씨 좋은 날이면 을지로 헌책방 골목을 들르거나 덕수궁 돌담길을 걷곤 했다. 그래서인지 큰아이가 어릴 적, 그 길을 함께 걸을 때면, 내가 지나온 시간 위로 아이의 발걸음이 포개지는 듯한 묘한 감정이 밀려오곤 했다.
3년 전에 큰 딸이 내 생일에 전자편지를 보내왔다.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 장군도, 그때는 정말 커 보였던 교보 문고의 위용에 놀랐던 것도, 경복궁에 가서 아빠한테 무릎 연골 이 다 닳아 없어질 것 같다며 업어달라고 칭얼대던 것도. 그 시린 겨울 가장 따뜻했던 기억이야. 종종 친구들과 놀러 갈 때마다 익숙한 기시감이 들어 생각해 보면 아빠랑 전부 와봤던 곳이라서 그랬던 거지. 아빠랑 함께했던 그 순간이 내겐 가장 따뜻한 계절이라 지나온 추운 겨울들을 이겨낼 수 있었어. 그러니까 올겨울엔 다시 한번 경복궁에 가자. 이젠 내가 아빠의 가장 따뜻한 계절이 될래. (중략)
한강대교를 건너 숭례문 방향으로 차를 몰다 보면, 남산타워(N타워)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강북의 거리는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 높은 건물들은 더 세련되고 화려해졌지만, 작은 골목길과 오래된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놀랍게도 내가 여섯 살 때 살았던 주택이 아직도 그대로니 말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강북의 거리는 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몇 해 전인가 아내와 함께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서 와플 하나 사 먹었다. 고소한 냄새와 따뜻한 바람이 어우러진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덕수궁을 지나 정동길까지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서울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내 마음을 붙드는 도시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이곳이, 나는 참 좋다.
이번 달부터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출퇴근할 사무실을 둘러봤다. 놀라지 마시라! '종로'다. 걸어서 10분 안에,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종로는 늘 나의 과거였고, 이제는 나의 현재다. 그토록 많은 계절을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을 붙드는 종로. 이제는 회상의 거리가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나의 길이다.
나는 내일 아침 또 종로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