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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압축된 삶

잘 지내시죠?

'그'를 생각하며

by 위엔디

'깨톡!' 문자가 들어왔다.
"추석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홍 병장님, 잘 지내시죠?"


제대한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홍 병장'이다. 적어도 '그'에게만큼은 여전히 그렇다. 사실 내가 자대에 배치받기 전부터 '그'는 이미 부대의 이등병이었다. 어느 날 새로 신병이 온다니 얼마나 설렜을까. 그러나 그 기대감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신병은 신병이되, 한 달 먼저 군에 발을 내디딘 선임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나는 입대 후 군사기본교육을 마치고, 7주간의 후반기 주특기 교육을 받았다. 몇 개 부대를 전전한 끝에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내 계급장은 이미 작대기 두 개가 번쩍이는 '일병'이었다.


'그'는 잊을 만하면 명절을 앞두고 이렇게 안부 인사를 보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 된다. 지금이야 병사들이 휴대폰을 쓰고 인터넷도 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청춘의 암흑기를 견뎌야 했다. 잿빛 하늘 아래, 병기창고에 밴 기름 냄새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던 시절. 그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보낸 수십 개월의 시간을 '그'와 함께 했다. 그런 탓에 '그'의 이름만 들어도 순식간에 '과거로의 회귀'로 이어진다.


"책도 쓰시나 봐요?? 우와~ 우리 홍병장님 실력자시네~~ㅎ~~"


고속도로 순찰대 근무를 마치고, 카톡에 뜬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겸사겸사 인사했다고 한다. 근래 카카오톡서비스가 업데이트되면서 뜬금없이 업체 사람들의 프사(프로필사진)가 떠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뜻밖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매개역할도 해주는 순기능도 있나 보다. '그'는 부대에서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그'는 나보다 2~3살 아래로, 제대한 이후에도 깍듯이 선배대접을 한다. 내가 상병이 되었을 때 본부 행정병으로 착출 되어 소대 내부반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부대 고참(선임) 병이 부대인원에 따라 동기기준을 다시 정하면서 소대 안에서는 1개월, 부대전체는 3개월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그'와 나는 다른 소대였기에 한순간에 '동기'가 되어버렸다. 수개월동안 존칭을 사용하다 하루아침에 '반말'을 사용하려니 얼마나 어색했겠는가.... 그 어색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제대한 후로는 '형님'이나 '홍병장님'호칭을 쓰니 '그'도 편해하는 것 같다. 그 젊음은 그렇게 수십 년을 흘려보냈고, 또 그 이어짐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


"홍병장님은 멋지게 익어가네요~~~ㅎ"


'그'가 내게 최고의 칭찬을 늘어놓는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멋지게 익어가고 싶다. 보다 여유롭게,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그'가 내게 자기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근무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다. "멋지네!!", '그'도 멋지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에 묻어나는 '성실함'은 덤이다.


예전에 복무했던 부대를 찾아가면, 내가 나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선임하사님'이 아직도 거기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남자들 사이에 불문율이 있다. 모임에서 '군대얘기'는 금기사항이다. 한번 쏟아내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도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군대후임 카톡메시지 하나에, 나는 시간을 거슬러 단숨에 20대 청년이 되어간다.


"추석명절 잘 보내고... 매번 잊지 않고 연락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ㅎ"



그날도 추석 아침이었다, 위병소에서 근무하는데 엄마손에 붙들려 차례를 지내러 가는 아이 손에 큼직한 배가 하나 들려있다. 내 앞을 지나가면서 그 아이가 큼직한 배 하나를 건네준다. 군대라는 닫힌 공간이 배 하나로 '세상과 연결'이 되었다. 누군가의 안부 한마디가 내겐 그때 그 배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홍 병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쭈욱 펴면 고향의 안방, 얼싸 좋다 김일병, 신나는 어깨춤, 우리는 한 가족 팔도 사나이 [군가 ; 팔도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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