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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생각 Jul 25. 2022

하이브가 세계관 놀이의 한계를 극복한 방법: 메시지

4세대 아이돌 기획의 핵심


   세계관 놀이 유행의 시작에는 엑소가 있었다. 외계 행성과 순간이동. 초능력 설정과 판타지 컨셉은 파격적이었지만 사실 더 강력한 New thing은 엑소라는 그룹의 구성과 활동 방식이었다. 기존의 형제그룹 슈퍼주니어-슈퍼주니어M이나 2PM-2AM 등은 타겟층과 활동 시기가 달랐던 것과 달리, EXO-K와 EXO-M은 같은 곡으로 다른 국가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쌍둥이 그룹'이라는 신개념을 창조했다. 그룹의 정체성이자 핵심 가치인 음악을 두 실연자가 공유한다는 다소 위험한 발상. 이는 팬덤 분열 등 여러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 뻔해 보였고, 둘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낼 힘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 팀의 관계에 당위성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세계관이다. 생명의 나무가 쪼개지고 평행세계 어쩌고 저쩌고의 스토리. 그리고 두 세계를 연결하는 파생된 디테일들은 각 그룹과 모든 멤버들이 세계를 완성하는데에 필요한 존재로 기능하게 했다.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놀이문화까지 가세해 두 그룹을 둘러싼 팬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엑소의 세계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exotic'한 이미지이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룹의 존재를 설득하는 스토리 라인과 역할에 있는 것이다.


   이후로도 SM의 전략은 동일했다. 엔시티는 '연결과 확장'이라는 활동 방식을 설득하기 위해 꿈이라는 소재를 데려왔고, 에스파 또한 '아바타'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쾅야와 블랙맘바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SM식 세계관은 '전에 없던 그룹 시스템 설명'이라는 핵심적인 목적이 있기에 '전에 없던' 거대한 판타지의 형태를 띈다. 그런데 SM식 세계관의 화려한 '이미지'나 '해석하기', '재미요소'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수의 아이돌들이 판타지 세계관을 첨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미있었고 효과적이었지만, 점점 그들의 세계관은 짐덩어리가 되었다.




  짐덩어리가 된 이유 1: 기획력

   엔터 시장은 휘몰아친다. 빠른 속도와 계속되는 경쟁. 좋은 음악에 대한 고민에 더해 세계관 요소를 활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에너지를 쏟기란 쉽지 않다. 사실 SM도 매번 그렇게 디테일한 스토리를 짜지 않는다. 데뷔 초 스토리 무비나 뮤직비디오를 통해 기본 개념과 배경을 탄탄하게 심어두는 것이 세계관의 거의 전부다. '쾅야', '아바타‘, ’나비스‘ 이렇게 확실하게 개념을 주입시키고나면 몇가지 떡밥만으로 팬들이 알아서 엮어먹는다. 새로운 개념이 밈화 되는 이것이 에스엠 세계관의 재미다. 또한 근본적으로 그룹 시스템을 설득시키고 나면 세계관은 제 역할을 다했기에 의미가 퇴색되고, 그룹은 점점 음악에 집중한 기획으로 돌아선다. 에스파도 메인 빌런인 블랙맘바를 벌써 무찔러버렸다.. 그런데 세계관 '전개'에 초점을 맞추면 일이 커진다. 매번 스토리를 짜야하고 디테일을 맞춰야 하고.. 부족한 엔터의 기획 인력으로 그걸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유 2: 결론과 목적의 부재

   아이돌 그룹의 방향성과 활동 종료 시점은 예측할 수 없다. 초기 기획은 높은 확률로 틀어지고 어느 시점에서 기승전결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갈수록 세계관은 흐지부지되고, 컴백 주기도 점점 길어진다. 최악의 경우 그룹의 행보와 세계관의 스토리가 충돌하기도 한다. 그룹 시스템 설명이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면 큰 문제없지만, 그저 차별화 전략으로 존재했던 세계관이라면? 결국 '이들의 세계가 달려온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만 남은 채로 존재하다가 허탈하게 막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 광경을 본 빅히트(하이브)도 세계관 놀음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음악 문화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재밌는 건 다 한다. 뭐든 과하게 제대로 하는 이들은 세계관 놀음 또한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그룹 단위를 넘어 엔터 사업 구조 자체에 대해 연구했다. 그렇게 이들은 세계관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방법 1: 개별 기획과 결론

   빅히트는 '세계관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무를 가장 먼저 채용한 회사다. 어설픈 기획이 아닌 완성도 있는 스토리를 짜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는 사업을 확장과 맞물려 그룹의 세계관 자체를 유의미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BTS의 경우 세계관과 관련된 콘텐츠는 BU라는 로고를 달아 세계관임을 명확하게 명시하는데, 이처럼 그룹 기획을 세계관과 음악, 두 갈래로 나누어 활동과 관계없이 스토리가 스스로 전개될 수 있는 환경을 꾸렸다. BU와 non BU를 분리해 원소스 멀티유즈에서 오는 혼란과 침범을 방지하고, 처음부터 투 소스로 기획해 두 소스가 필요한 경우에만 만났다 헤어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구조를 짰다.

   이렇게 활동과 분리된 하이브식 세계관은 챕터를 열었다 닫듯이 스토리를 다룬다. n부작, 시리즈 등 비교적 단기적인 기획을 통해 음악이 스토리를 품을 필요가 없이 문을 정확하게 닫아 혼란을 막는다. 그렇기에 활동 방향성이 변화하더라도 세계관이 흐려지지 않으며, 웹툰 등 부수적인 콘텐츠에서 다시 챕터를 열어 의도한 결론을 맺을 수 있다. 음악을 통해선 얕은 소비로도 느껴지는 명확함을, 세계관과 연관된 콘텐츠에서는 또 다른 깊은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하이브식 세계관이다.


 *방법 2*: 메시지라는 목적

   가장 핵심적이고 유의미한 방법. 목적을 만든다. 시스템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룹의 세계관은 무엇을 위해 달려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 그거슨 바로... 메시지다. 그 누구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닐테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해내는 엔터사는 많지 않다. bts는 기획 단계부터 설정된 세계관이 없었기에 'Love your self'와 같은 인류 보편의 쉬운 메시지를 내보였다. 이는 사회적인 의미를 품고 세계적인 성공을 이루는데 핵심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두 번쓰기엔 투박하다. 그렇게 신인 아티스트들에게는 '다름이 만드는 상호보완(투바투)', '의미의 충돌과 생성(엔하이픈)'등 기획 단계부터 철학적이고 디테일한 시의성있는 메시지를 심었다. 이 두 그룹에게도 판타지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예전만큼 그룹 셀링의 메인 요소가 되지 않을 것이며 중요하지 않다. 일관된 메시지는 이 앞의 방법들이 무색해질 만큼 그 자체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화려한 스토리 없이도 스스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확장을 거듭하며 인류 보편의 가치에 닿는다.





   아이돌 문화의 시작에는 10대의 메시지가 있었다. H.O.T. 'we are the future', '아이야'. 젝스키스 '폼생폼사', '학원별곡'. 그리고 태초에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교실이데아'. 이후 음악과 퍼포먼스, 아이돌 문화의 발전을 따라 엔터테인먼트와 소비자들은 메시지 외의 다양한 재미를 탐험하고 개발해나갔다. 새로운 장르와 세련된 사운드, 화려한 시각 요소 등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티스트 차별화 전략이었고, 청량돌, 썸머퀸, 짐승돌 등 장르적이고 컨셉적인 포지션을 잡는 것이 그룹의 성패를 좌우했다.


 

   4세대. 아이돌 기획력과 완성도는 상향평준화 되었다. 엔터 산업은 트렌드의 빠른 반영을 넘어 이제는 심미의 실험장이 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지리스닝 틈에서도 다시 메시지를 찾는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라는 있지, 나르시시스틱 아이브. 이제 각 그룹의 개성은 메시지로 표현된다. 자체 프로듀싱이 중요해지는 것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표현할 때 가치관이 묻어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지-심미주의-메시지. K-POP 아이돌의 역사는 한 바퀴를 돌았고 기획자들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 되었다. 누가 이길지 아직 불투명한 갓 시작된 싸움이지만 효과적인 기획구조와 기획력, 디테일하고 세련된 메시지를 고민하고 있는 하이브가 선두 그룹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엔하이픈 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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