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고체화 된 감정 위로 얇게 덮이는 따뜻한 치즈퐁듀
대부분 영화의 감정은 덩어리로 온다. <헤어질 결심>의 묵직함처럼 휘몰아치고 흠뻑 잠겨 벅찰수록 강렬한 영화적 경험이라 느낀다. 하나의 사건에 의미가 부여되고 부풀어 나가는 과정. 그러나 <에에올>은 수많은 설명과 이유를 생략한 채, 버석한 영수증 위에 현재를 옮겨 적으며 시작한다. 감정의 작용은 엉망으로 정리된 더미 속에 멈춰 미뤄둔 채, 다 쓰지도 않고 새로 산 공책의 페이지를 연다. 우리는 그렇게 깨끗한 페이지에 다른 버스의 이야기를 옮겨 적기 시작한다. 엉망인 책상은 뒤로 하고.
‘인생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 발버둥이다.’ 누가 한 말이냐면... 내가 한 말이다! 다른 버스 속 수많은 이상을 옮겨적던 에블린은 발버둥을 시작한다. 터무니 없어보지만 저렇게 근사할 가능성이 있었던 나를 그려내며 지금의 나를 엉망인 책상 위에 어디 아무렇게 던져놓는다. 그러나 이내 수많은 삶의 발버둥까지 경험하게 되고.. 결국 터져버린다.
...
...잿더미
...끝없는 허무..........
...
정신없음의 끝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목적은 놀랍게도 그 잿더미다. 그 모든 맥시멀이 결국 낫띵매럴스로 시꺼멓게 무너져 내리는 경험.
그 후 영화는 타다만 영수증 한 조각을 주워 건넨다. ‘노래방 기계’. 비로소 우리는 그 납작한 글자 속 노래방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그 조각난 순간의 쪼매난 감정을 마빡에 갖다 붙여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꼭 눈알 스티커가 아니어도 좋다. 다정한 것이 승리한다는 메시지는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그건 웨이먼드의 전략일 뿐 결국 허무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주물러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음이 돌맹이가 됐을 땐 뭐든 갖다 붙이자구. 눈알 스티커, 치즈 퐁듀,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