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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철 Jan 04. 2022

21세기 귀족(35)

중세 유럽의 토지사상(5~6세기. iii)

당신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믿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신분제도는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부동산제도'라는 이름으로.

 
  
  

- 프롤로그 -


지금까지의 카카오톡 브런치의 가장 큰 방향성과, 필자의 <21세기 귀족>의 방향성이 다소간 다를 것이다. 허나 브런치를 애독하는 독자들 중에 필시 깊은 학구열과 경제적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이 글을 올리는 바이다. 이 글 <21세기 귀족>은 필자가 지난 3년 간 개인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당신도 이 <21세기 귀족>을 통해, 오늘날의 부동산 기득권층이 꼭꼭 숨겨왔던 역사를 발견하길 바란다.


- 본문(35) : 중세 유럽의 토지사상(5~6세기. iii) -


28조

일반적으로 벌목 특권이 허가되는 경우에 관하여.

1. 만약 부르군트인이나 로마인이 숲을 소유지로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타인의 숲에서 쓰러진 나무 또는 과실이 열리지 않은 나무를 벌목하여 수익할 권리가 있으며, 그 숲의 주인은 그를 내쫓아서는 안된다. 


지주로서 이웃에게, 아마도 토지 재산이 없는 가난한 이웃에게 토지의 지대를 함께 나누고 베풀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지공개념이 명백히 재확인된다. 


38조

이민족이나 나그네를 영접하여 대접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하여.

11. 우리는 이러한 법들이 부르군트와 로마의 모든 농노와 노예들에게도 보장되길 바란다. 


39조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에 대하여.

3. 허나 만약 주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집사나 농노가 어떤 나그네를 영접하고 이 사실을 감춘다면, 그 집사나 농노는 100대의 태형에 처한다; 그리고 그 주인은 그 도망자[나그네]가 어디에 숨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맹세를 해야 한다. 


XXXVIII조에서 농노가 사실상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여러 법 중 하나다. 이에서 농노를 노예처럼 보는 로마적 관점을 게르만이 이어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1] 같은 맥락으로 XXXIX조에서 농노는 법적으로 자유민인데도 주인(“master”)에게 노예처럼 인신이 예속되어 있음이 암시된다. 주지했듯 중세 농노는 사실상 노예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것이다.[2] 


51조

자신의 아들들에게 재산 상속분을 주지 않는 자에 대하여.

1.(전략) 허나 최근에 논란에서 어떤 아틸라가 이러한 오랜 법의 규정을 무시하였고 법의 가장 유용한 수칙에 대한 불복종을 보였고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주고 싶지 않아서 불법적인 서면 거래를 통해 타인에게 재산을 양도하여 아들에게 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기에, 우리는 그 누구도 이러한 나쁜 예를 본받지 않기를 원하여, 명하노니 그가 위법하게 행한 것은 전혀 법적 효력이 없으며, 또 그의 재산은 아들이 소유하도록 한다. 이런 판단의 목적은 범법자의 불의를 막기 위한 것이며, 이로 인하여 보편적 정의는 법으로써 글로 쓰이고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명하노니, 누구든지 자신에 아들들에게 법적으로 속한 재산을 상속해주지 않으려는 자는 서면으로 그들에게 불리하거나 해로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오래전에 선포된 법은 지켜져야 하며, 가장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면, 이는 효력이 없다. 


이 법은 위의 I조처럼, 토지를 가진 남성에게 그의 자유로운 토지 처분권을 제한하여 장차 아들들에게 공평히 상속되도록 하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사망한 자의 유족에게 유류분 청구권을 보장하는 것과 같으며 토지주권사상과 토지평등사상이 확인된다. 또한 남성에게만 토지를 상속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군역토사상이 확인된다. 특히 “이런 판단의 목적은 범법자의 불의를 막기 위한 것이며"라는 부분에서 토지에 대한 처분권의 완전한 자유는 정의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원시 게르만적 토지사상이 엿보인다. 


53조

부가 사망 한 후, 모가 생존해 있는데, 유언을 남기지 않고 자가 사망했을 경우의 상속에 관하여.

1. 이전부터 법으로서 오랫동안 제정되고 발표되어 인정되어온 바, 만약 부가 사망한 상태에서 자가 유언 없이 사망했는데, 모가 생존한 상태라면, 모는 여생 동안 자의 재산(용익권)을 소유할 것이요, 그녀까지 사망한 이후에는 부계에서 아들의 친척 중에 가장 가까운 [남성]친척이 우리가 언급한 모든 재산을 상속할 것이다.(후략) 


군역토사상이 확인되는 바, 첫째로 아들의 재산에 대한 권리가 어머니에게 가더라도 그녀는 그 땅에 대한 용익권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훗날 그녀가 사망하면 가까운 남성이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앞서 살펴본 LI조, LII 조뿐만 아니라 LXXIV조, LXXV조, LXXVIII조 등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84조

토지 매매에 관하여.

1.우리 부르군트인의 할당지는 너무도 쉽게 매매되어 왔음을(줄어들어 왔음을) 알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지역에 자신의 할당지 혹은 소유지가 있지 않는 한 자신의 땅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현행법으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2. 또한 아래와 같은 금지 사항이 추가되어야 하는 바, 토지를 가진 그 누구라도 이를 팔아야 되는 필요가 생긴다면, 부르군트인이 매각하려는 그 어떤 토지에 대해서도 외지인은 로마인보다 우선하는 매입자가 될 수 없으며, 또 어떤 명목으로도 외지인은 토지를 매입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3. 더불어, 다른 지역에도 토지가 있는 매도자에게만 (토지를)매입해야 하는 점은 필히 준수되어야 한다. 


1항에서 “우리 부르군트인의 할당지는 너무도 쉽게 매매되어 왔음을”이라는 문구에서 그러한 현상을 문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처럼 외국인에게 국토 소유를 제한하여 공동체원들의 향유 아래 있게 하려는 취지이기에 토지주권사상이 확인된다. 2항과 3항도 같은 맥락이면서 3항에서는 토지평등사상 또한 확인된다. 


85조

피후견인에 대하여.

2. 만약 모가 없다면, 유족인 미성년 아들의 재산이 증가한다는 조건에 한해서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그의 재산 증식은 그의 유익으로 처리하며, 조금이라도 남용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  


“그의 재산”과 “그의 재산 증식”라는 두 표현에서 이 법의 목적물을 부동산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일단 미성년 남자의 상속 재산에 대한 법이고, 곡식 등의 동산은 소비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가상각되어 가치가 증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위 조항은 미성년 남성의 토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표면적 목적이고, 그 너머에 궁극적 목적은 그가 장차 성년이 되어 지주로서의 군역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부르군트 왕국의 군도바드 헌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6세기경 부르군트 왕국의 위치. 진한 황색으로 칠해진 나라다.(https://www.wikiwand.com/en/Burgundians.)


첫째로 왕국의 토지는 왕토사상과 그 위에 군역토사상이 있었고 이는 I조, LI조, 미성년 남성의 토지 상속을 보장하는 LXXXV조 등에서 확인하였다. 


둘째로 매매의 자유를 다소간 제한하는 등 토지양극화를 방지하는 토지평등사상이 있었고 이는 LI조, LXXXIV조 등에서 확인하였다. 


셋째로 지주권의 오남용을 견제하고 가난한 자에게 숲 등의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를 공유해야 하는 공개념적 토지 소유를 규정한 바 있었으며 이는 XXVII조, XXVIII등에서 확인하였다. 


넷째로 지주를 농노의 주인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농노는 사실상 노예와 같은 사회적 지위로 격하되었으며 이는 XXXIX조에서 확인하였다. 다섯째로 토지소유권 및 지주권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 간단히 평하자면, 부르군트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 토지공개념, 토지주권사상, 토지평등사상, 군역토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부 농노가 되어버린 빈곤한 자유민들은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중세의 신분제에서 자유민이란,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은[3] 이렇게 현실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당대 부르군트 왕국의 토지사상과 자유인의 신분 구성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한편 유럽 일부 지역에서 과거엔 주로 현물이었던 지대가 노동지대로 바뀌기 시작하였는데[4] 이는 앞서 부르군트 법에서 농노와 노예를 거의 동격으로 여긴 것처럼 이는 소작인의 지위가 인신이 예속된 농노처럼 낮아질 것을 암시하는 예고편이었다. 실제적으로 자유인의 농노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 경우는 대지주에게 주로 강압을 당하여 매각⋅양도의 형식으로 그들에게 토지를 빼앗기고 결국 그들의 예속민이 되는 경우였다. 두 번째 경우는 표면적으로나마 자발적으로 지주들에게 토지를 무상양도 혹은 매각하고 그 토지의 소작인으로써 그들의 장원에 들어가는 경우였다.[5]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토지 없는 자유인이 농노로 전락하고 그 계층이 두터워 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이런 반강제가 너무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이를 금하는 칙령 및 명령이 여러 차례 내려지고 조사관이 파견될 정도였다.[6]


허나 여러 차례 법적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은 마치 로마에서 수백 년 동안 수차례 토지 독점을 제한하기 위해 농지법이 발의되었으나 큰 효력과 성과가 없었음을 반증한다.  




저번 글에 이어 5~6세기의 게르만법이 보여주는 당시 토지사상을 살펴보았다.

(1) 살펴보았듯이 아직 토지공개념은 꽤나 뚜렷한 편이다.


(2) 허나 '임대료'라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임차인들은 노예로, 임대인들은 사실상 귀족적 삶을 영위해갔다.


21세기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Referernces

[1] 이기영,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현실문화연구, 2014), 76~77쪽.

[2] 이기영, “영주권의 형성”, 「프랑스사 연구」(2012), 25쪽.

[3] Wolfgang Sellert/최병조 옮김, “독일법상 소유와 자유의 역사에 관하여”, 「법사학연구」(1993.12), 95쪽.

[4] 이기영,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 97쪽.

[5] 이기영,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 101쪽, 129쪽.

[6] 이기영, 『고전장원제와 봉건적 부역노동제도의 형성』(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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