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영철 Jan 18. 2022

21세기 귀족(200년 앞선 경제학자)

21세기. ii

일찍 경고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챕터 6, 7을 통째로 건너뛰고 마지막 챕터 8을 선공개하는 바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다시 '경제위기'가 15년이라는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2022년부터 눈을 뜬 그 경제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가?


<21세기 귀족> 연재를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이미 눈치챘을 것인데, 그 원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부정의하고, 불공평하고, 착취적인 현대의 부동산제도로 21세기 귀족으로서의 삶을 누려온 자들의 '거품 파티'는 머잖아 수년 안에 끝난다.


그 파티장에서 사라진 거품은 피눈물이 대신할 것이다.


부동산발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에 대비하라, 그리 머잖았다.




필자는 헨리 조지의 선견에 동의하여 확신하건대 이러한 수준의 관점 및 사고방식으로는 부동산 거품의 형성과 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반복되는 필연적 역사’를 절대 막을 수 없다.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의 저자이자 경제학자 헨리 조지.(photo : New York Public Library's Digital Library.)


산업 활황기마다 토지가치가 꾸준히 상승함으로써 결국 토지투기가 생기고 그로 인해 토지가치가 도약하였다. 그 후에는 예외 없이 일부 생산 중단 및 그와 관련된 유효수요 중단 내지 거래 부진이 뛰따랐고, 여기에 대체로 상업의 파탄이 동반하였다. 그 이후에는 상대적 정체기가 지속되면서 서서히 균형이 형성되었다가 다시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중략) 산업 활황기가 절정기에 이르면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이 나타나서 생산 제약으로 이어진다.[1]


결정적으로, 세계 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GDP에 비교한 체감 주택가격은 근현대에 들어와서 매우 높아졌다. 내 집 마련의 문제가 ‘실질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아래의 자료는 경제선진 14개국을 대상으로 1870~2012년 간 1인당 실질 GDP에 비교한 주택 가격의 역사적 추이를 보여준다.[2]



특히 미국은 1997~2006년 사이에 실질 주택 가격이 약 85% 올랐으며,[3] 그 중 2004년 한 해에만 라스베가스는 실질 주택 가격이 43%, 피닉스에서는 49% 오르기도 했다.[4] 미국을 포함한 OECD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금융부문 규제 완화 이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실질 주택 가격이 약 30% 증가했으며 특히 호주는 약 45%에 달했다.[5]


 지난 20세기 초~ 21세기 초의 기간을 두고 보자면 2010년대의 실질 주택 가격은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보다 약 세 배 뛰었고 그 대부분의 증가는 20세기의 후반기 즉, 2차 대전 이후였다.[6] 이로써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주요 선진국의 가계대출 증가는 부동산대출의 급증에 기인하며, 이는 실질주택가격의 급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실질 주택 가격이 올라왔는가? 1~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이겨낸 우리 인류가 1950년대부터 첨단 과학과 기술이 발달에 힘입어 주택에 고기능 반도체라도 설치했단 말인가? 주택에 반도체를 설치하지도 않고 벽에 금을 바른 것도 아님에도 실질가치가 비정상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급증했다. 


이유는 명백하다. 근현대의 부동산제도가 토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이익을 지주의 것으로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도시로 인구가 몰리고, 그 도시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지주들은 돈 잔치를 벌였다. 토지는 그 소유주가 가만히 있어도 새로이 돈을 벌어다 주는 최고의 금융자산이 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헨리 조지는 이를 간파했다.


이곳이 인구의 중심이고, 교환의 초점이고, 고급 산업이 입지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구 밀집으로 인해 이 토지에 결부된 생산력은 토지의 비옥도가 수백 배, 수천 배 증가한 것과 맞먹는다. (중략) 이 토지의 첫 정착자 또는 그에게서 권리를 승계한 사람은 이제 거부가 되어 있다. 


이 사람이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처럼 일을 하지 않고 잠만 잔다고 하더라도 자는 동안에 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역시 부자가 된다. 이러한 토지를 한 조각만 소유하여도 기계기술자보다 더 많은 소득이 생긴다. (중략) 그런데 이 토지는 최초의 이주자가 정착했을 때, 즉 아무런 토지 가치를 갖지 않았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동일한 토지이다.[7]


미국인들이 2000년경부터 초에 큰 빚을 지면서까지 주택을 매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새천년을 맞이하여 내 집 마련의 소망을 이루기 위함인 것보다도, 90년대 말 닷컴버블 붕괴의 매운 맛을 본 직후에 그에 비하여 부동산이 지난 30년 동안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인 금융재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표를 보라.[8]



1996년 미 연방준비제도의사회 의장 앨런 그리스펀은 20세기 말의 닷컴버블을 두고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 평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J. 쉴러는, 그 표현을 그대로 제목으로 옮긴 저술을 만들어 큰 명성을 얻었다. 뒤이어 2008년 서프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했고, 그는 다음 저술에서도 이 사태의 핵심 원인도 위와 동일하게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주장했고,[9] 또한 주택 보유를 과도하게 장려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10]


앨런 그리스펀. 그 뒤엔 부시 전 미대통령(photo : Shealah Craighead.)


 이어서 쉴러는 부동산발 경제위기의 해결책은 ‘금융정보 인프라 개선, 경제 리스크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금융시장 영역 확장, 안전한 소매금융 수단의 개발, 금융 민주화, 인간 심리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접근’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11]


 허나 이는 핵심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원인과 단기간의 해결책(단기간의 효과도 그다지 없을 것이지만)을 찾아내는 것에 만족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다. 그와 그에 동조하는 경제학자들의 원인 분석은 아래와 같은 수준이다. “자네 스미스씨 소식 들었어? 어제 Bank of America은행에 강도들이 들이닥치고 기관총을 난사했는데, 그곳에서 모기지대출 상담을 받고 있던 스미스씨가 총에 맞아 즉사했다군. 그가 Citi Bank은행에서 상담을 받았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그들은 왜 주택 시장에 그토록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는지 경제적 측면에서만 탐구한 탓에 핵심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필자가 확신하건대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으로는 부동산 문제는 해결책이 결코 획득될 수 없다.


2008년 경제위기는, 현대인들이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들이 붓고 있는 것은 주택이나 건물에 대한 애착심이 뒤늦게 생겨서도 아니고 비이성적 과열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짭짤한 수익률을 보여줬던 실제 경험에 기반했기 때문에, 오히려 비이성적 판단이 아닌 ‘이성적’ 판단에 가깝다. 어리석은 판단보다 현명한 판단에 가깝다는 말이다. 현대의 부동산금융의 시스템과 그 안에서 파생되는 부동산금융상품들이 “부동산 가치의 지속적 상승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졌던 이유도[12]

 바로 이에 있다.


하버드와 MIT의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은행 및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자들이 그 정교하고 치밀한 부동산금융상품을 만들었다. 그들이 잠시 동안 어리석어서 주택 가격의 역사적 상승 추세를 전제한 그 상품들은 만들었던 것일까? 결코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다. 그 천재들이나 그들의 고객들 모두, 실제 경험에 근거한 최선의 그리고 최상의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Photo credit: Michael S. Helfenbein.)


게다가 미국, 영국 등 고도화된 MBS상품이 매매되는 국가에서는 해당 은행들이 주택 가격의 변동성까지 고려하여 모기지에 따르는 리스크를 시장에 전가시키고 있었는데,[13] 그러한 보험까지 들어 놓을 정도로 나름 치밀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래도 비이성적 판단과 비이성적 과열이 핵심 원인인가? 


한편 2004년 말에는 연방준비은행이 당시 급증한 주택 가격에 버블이 끼었다고 볼만한 뚜렷한 근거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14] 이는 주택 가격에 실제적 가치가 잘 반영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금융엘리트가 포진해 있는 연준위의 위 판단과 믿음이 비이성적이란 말인가? 그와는 대조적으로 일찍이 헨리 조지는 근현대의 부동산제도는 필연적으로 부동산가격에 거품을 만들어냄을 꿰뚫어보았다.


인구가 증가하고 개선이 꼬리를 무는 사회에서 토지가치는 계속해서 상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토지가치 상승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자연히 토지투기가 발생한다.[15]


필자는, 로버트 쉴러가 2008년 버블 붕괴 사건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부동산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경험이 핵심 원인이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믿음과 경험은 부동산 소유주로 하여금 모든 지대를 독점하게 보장해주어 가격 거품을 필연적으로 형성하게 만드는 ‘현대의 부동산제도’가 필수적으로 선행해야 성립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6년 4분기에서 2006년 1분기까지 주택 임대료는 4% 올랐을 뿐인데[16] 같은 시기에 언급 했듯 실질 주택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미국 전 국민이 주택 구매에 열을 올렸던 까닭은 임대료 수익이 목적이 아니오, 시세 차익(누그러뜨린 표현을 사용하자면 자산 증식)이 주된 목적이었음을 반증한다. 현대의 부동산제도가 그 소유주로 하여금 막대한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핵심 원인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훗날 재차 부동산시장발(發)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며 피할 수도 없다. 우리 자녀들도,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게 될 것이다.




나머지 내용은 다음 글들에서 이어진다.


References

[1] George/김윤상 옮김, 『진보와 빈곤』(비봉출판사, 2016), 277쪽.

[2] Katherina Knoll, Moritz Schularick, and Thomas Steger, “No Price Like Home: Global House Prices, 1870 - 2012”(CESifo, 2015), figure 17.

[3] Shiller/정준희 옮김, 『버블경제학』(랜덤하우스, 2009), 그림 2-1.

[4] Robert Shiller, “Understanding Recent Trends in House Prices and Home Ownership”, NBER(2007), p. 4.

[5] Dan Andrews, (2010), “Real House Prices in OECD Countries: The Role of Demand Shocks and Structural and Policy Factors”, OECD Economics Department Working Papers, No. 831, OECD Publishing, Paris. http://dx.doi.org/10.1787/5km33bqzhbzr-en, figure 6.

[6] Knoll et al, p. 6.

[7] George/김윤상 옮김, 전게서, 252쪽.

[8] 삼성자산운용, “부동산과 주식의 장기수익률 비교”, 2018. 이 자료는 삼성자산운용이 198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KB부동산, 한국은행, 자사의 데이터를 재구성한 것이다. 부동산 총수익 지수는 ‘매매가격지수+전세금의 예금수익률(매매가격 대비 전세가율X예금금리)’

[9] Shiller/정준희 옮김, 전게서, 36쪽.

[10] 상게서, 41쪽.

[11] 상게서, 2009.

[12] Joseph Singer, “Property Law and the Mortgage Crisis: Libertarian Fantasies and Subprime Realities”, 1 Prop, L. Rev. 7(2011), p. 9.

[13] Haibin Zhu, “What drives housing price dynamics”, BIS Quarterly Review(2004.03), p. 77.

[14] Jonathan McCarthy, Richard W. Peach, “ARE HOME PRICES THE NEXT “BUBBLE”?”,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Economic Policy Review, Vol. 10(2004).

[15] George/김윤상 옮김, 전게서, 274쪽.

[16] Shiller, “Understanding Recent Trends in House Prices and Home Ownership”, p. 4.

작가의 이전글 21세기 귀족(거품은 곧 피눈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