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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잡담 Oct 27. 2022

파견? 여행? 이민?


“나 프랑스 갈 수도 있어”라고 커밍아웃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프랑스에 대해서 찬양했다

“와 프랑스 낭만적이다”

“우와 프랑스 거기 가면 몽마르트르에서 에스프레소 한잔하는 거야”

“오 푸아그라에 보르도 와인 미식가 되겠네”

“와 진짜? 메시 경기 직관할 수 있는 거야?”

마치 당장이라도 프랑스에 가려고 준비한 사람들처럼 프랑스에서 해보고 싶은 위시리스트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미처 위시 리스트가 없었던 나는 그들을 대신해서 그 모든 것을 하기 위해 프랑스에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가족들 역시 반대는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해외로 파견이 하나의 승진 관문인 줄 알고 흔쾌히 허락하셨으며, 우리 부모님은 늦게 결혼한 아들일 아내 없이 또 혼자 자취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못마땅하게 여기셨는지도 모르겠지만 너희들 좋을 대로 하라고 그린라이트를 던지셨다. 이제 내가 결정할 일만 남았다. 프랑스라는 단어가 갑작스러워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냉정하게 결정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라는 놈에게 그녀를 뺏기는 게 화나고 싫었고, 그녀를 프랑스에 보내고 또 이별 아닌 이별을 한다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4년의 연애, 4년의 이별, 그리고 다시 4년. 험난한 여정을 넘어 겨우 결혼에 성공했는데 다시 4~5년을 떨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같이 가자.’

 프랑스 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든 서로 옆에 있어 주는 게 사랑이고 결혼이라고 믿었다. 이제 프랑스에 간다는 전제로 플랜을 급선회하기로 했다.

 당당히 프랑스에 간다고. 나 프랑스에 간다고~


“나 프랑스 가.”

“와우, 좋겠다. 낭만의 도시 프랑스. 근데 뭐 하러?”

“... 그게... 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

만나는 사람마다 이제 뭐 하러 가는지 묻는다. 프랑스에 가게 된 사정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도 피곤하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이것을 해결한 한 마디가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프랑스에 [      ] 간다.’ 이 한마디면 되는데. 멋지게 한마디 던지고 멋지게 뒤돌아 우아하게 워킹하면 되는 건데 여기에 들어가는 알맞은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를 프랑스로 이끈 그녀는 분명하게 말한다. ‘나 프랑스에 파견 가.’ 그녀는 프랑스에 [파견] 간다는 가 명확히 성립한다.


파견 : 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


그녀는 그녀가 다니는 회사에서 프랑스에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녀가 프랑스로 발령을 받은 것이기에 그녀는 정확히 파견을 가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일정한 임무라. 없다. 난 엄밀히 직장을 그만두고 간다. 프랑스로 가기 위해 지난주 8년간 일해온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임무를 주는 기관이나 단체는 없다. 물론 프랑스에서 마냥 놀 수는 없으니 가서 뭐라도 하겠지만 일정한 임무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기에 파견은 아닌 거 같다.



나는 프랑스에 [여행] 간다?

여행 :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한국에서 프랑스에 가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여행일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나라 1위다. (2위는 스페인)

하지만 난 아쉽게도 유람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프랑스에 가는 것 또한 아닌 거 같다. 물론 가면 한두 달 유람을 즐기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아닐뿐더러 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 프랑스에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프랑스에 [이민] 간다?

이민 :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언뜻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이사는 하지만 아주 영영 거기에 살러 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부모님 친구들이 다 있는데 노년에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서 생을 마감 할 수는 없는 노릇.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이민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이든 방향성은 항상 목적을 동반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S대에 가야 한다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어디를 간다는 것은 타당한 목적이 있어서 왔다. 슈퍼에 가는 것은 맛있는 것을 사는 것이 목적이고, 극장에 가는 것은 영화를 보기 위함이고, 호텔에 가는 것은 쉬러 혹은 잠을 자러 가는 것이다. 나는 대학시절 춘천에 공부하러 갔었으며,  대전에 군에 복무하러 갔었고, 나는 서울에 돈 벌러 왔었다. 당신도 분명 어딘가를 간다면 혹은 갔었다면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더불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프랑스에 간 목적도 분명 생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까지


‘나는 프랑스에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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