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싹아지'에서 '곧은 줄기를 가진 꽃'으로
한때 정치인이었던 시인 도종환.
그의 시 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유명한 시 하나를 뽑으라면, 그것은 바로 '흔들리며 피는 꽃'일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은 우리 삶을 은유하는 말이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시련과 흔들림 없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결하면서도 깊은 언어로 전해 준다.
이 시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겪는 성장의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는 흔들리며 줄기를 곧게 세우고, 젖으며 꽃잎을 피운다. 그 흔들림과 젖음은 불완전함이 아니라,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최근 김경일 교수의 책이 새로 나왔다. 소아정신과 의사 류한욱과 함께 쓴『적절한 좌절』이다.
김경일 교수의 책이나 강연을 즐겨 보거나 듣는 편이고, 제목도 나름 시사성이 있어 보여 구매하였다. 그리고 이 책이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과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많이 일치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우리 인생이 좌절 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특히 자녀를 키울 때,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고 좌절을 막아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정서적 비만'의 상태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립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지나친 개입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 두기와 지켜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착 과잉의 시대, 불안한 부모일수록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해결해 주려 하고 통제하려 든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스스로 자기 감정을 돌보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으로 가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 조절이 서툴거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자존감이 낮으면서도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위태로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적절한 좌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야 세상이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건강한 사회성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싹수'의 방언이다. 하지만 '싹수'라는 말보다는 '싸가지'라는 말이 훨씬 더 친숙하다. 이 말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싹’과 ‘아지’가 결합된 것이다. ‘아지’는 ‘아기’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망아지, 송아지, 강아지, 도야지(돼지)처럼 말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싹아지’는 말 그대로 '씨앗에서 움튼 어린싹'을 말한다.
그런데 씨앗이라고 다 같은 씨앗이 아니다.
어떤 씨앗은 아예 '싹아지'가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건 진짜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아예 생명력이 없어서 제대로 자랄 희망이나 싹수조차 없는 것이 바로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싹아지가 나도 처음부터 싹수가 시퍼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 금방 틔운 '싹아지'는 노랗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다. 어리고 약하다고 지나치게 비료를 많이 주거나 또는 그늘에만 놓아두면 '싹아지'는 멀대같이 커서 언제든 부러지기 십상이다. 이게 진짜 '싸가지가 노란 것'이다. 위험한 상태라는 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노래했고, 김경일과 류한욱은 '적절한 좌절'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건강한 '꽃잎'이 되려면, 뜨거운 햇빛도 견디고, 흔들리고 비바람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도 한 송이의 국화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고, 무서리도 내려야,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 핀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는 솔직히 매우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이다. 인간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불안이다. 그러니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를 하나 낳으면 그때부터 걱정과 불안이 시작된다. 옛날에는 한 동네가 아이를 같이 키웠는데, 지금은 온전히 개인의 경험으로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좌절'이라는 한가한 소리나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고생하고 좌절하며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부모가 좀 개입해서 편한 길을 제시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적절한'이 도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느냐고 답답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틀린 말이 없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학교마다 부모들의 지나친 과보호와 간섭으로 몸살을 앓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고등학교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사회에 나가서도 비슷한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의 최종적인 목표는 '독립된 개인으로서 사회에서 살아나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책을 추천하는 유희정 교수는 말한다. 책을 쓴 김경일 교수도 분리-독립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서로 공감하고 『적절한 좌절』이라는 책을 썼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좌절'은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시멜로 이야기』와 같은 책에서 말하는 '만족 지연'의 내용과도 맥락이 닿아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한다고 그 즉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아이는 감사할 줄도 모르고, 참을성도 없는 '성인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마와의 애착 관계를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좌절과 만족 지연, 그리고 분리의 경험을 통해 아이는 더 성장하는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규칙을 이해하며 사회성을 기르고, 엄마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면서 이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좌절이 진짜 좌절이 아닌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 바로 '적절한 좌절'인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좌절과 분리, 만족지연을 자연스럽게 경험하지 못하면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건강하다'는 기준이 또 달라서 문제가 되겠지만, 책의 내용을 인용하며 마친다. 나름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이론을 주창하면서 무의식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개념을 만들어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체 정상적인 상태란 무엇인가요?"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는 여기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장 유명한 대답을 했죠.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특징은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히 연애 감정이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의미하고, '일'은 개인으로서 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게 정상'이라는 뜻이죠.
『적절한 좌절』 p.19
깊이 동의하는 바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살며 사랑하며 일하는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