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에서 찾은 '아름답다'의 의미
지난 글에서는 '적절한 좌절'의 목표가 건강한 분리와 독립이라고 했다. 건강한 분리와 독립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며, 사랑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한 사람으로서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것, 가장 ‘나답게’ 자라나는 것을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아름답다’는 형용사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는 그런 뜻을 담고 있다.
먼저 현대국어에서 '아름답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1.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현대국어에서 '아름답다'는 말은 균형과 조화, 즐거움과 만족, 훌륭하고 갸륵한 등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과 관련한 역사 정보를 '우리말샘'을 통해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름답다'는 말은 '아름'과 '-답다'가 결합한 말로 15세기 문헌에 이미 그 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답다'라는 말이야 큰 문제가 없는데, 그렇다면 '아름'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사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은 존재한다. 가장 먼저는 '아름'이 '개인적인 것'이나 '사사로움'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는 데서 근거를 찾는다.
원래 '아름답다'의 뜻은 '사사로움'의 의미로도 쓰였다. 형태는 같은데 의미가 달랐다고 하는데, 아래와 같은 사례에서는 '사사롭다'를 '아름답다'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물은 제각기 사사롭도다'와 같은 예시는 '만물이 제각기 다 개성을 갖추고 있어 모두 다 아름답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아름답다'는 말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사로운 감정의 표현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아름다움의 기준도 다르고, 종류도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 등으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똥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씨를 뿌리는 농부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권정생 선생의 동화『강아지똥』에서, '강아지똥'은 아름다운 숭고미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강아지똥'의 자기 희생은, 이야기 안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얼마든지 '똥'이라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처럼 사사로운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다'는 말이 '사사로움'과 관련이 있는 어휘라면, '아름답다'는 말은 어떤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가장 개성적이고 돋보이는 것', '가장 나다운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말하면, 자기만의 철학을 세우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남의 모습이 부러워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은, 잠시 예쁘게 보일지는 몰라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심하면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인다. 얼마나 내면이 공허하고 내세울 것이 없으면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참고로 '예쁘다'라는 말은 실제로 '어엿브다'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본디 '가련하고 불쌍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너무 예뻐지려고 무리하게 외모만 가꾸는 것은 오히려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이는 짓인 것이다.
반면 '아름답다'는 것은 ‘가장 나다운 것’이며 내면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한편, ‘아름답다’의 어원을 ‘안음 + 답다’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다시 한번, 『강아지똥』동화의 표지를 보자.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한아름 안은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게된다.
이처럼 '아름답다'는 말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아름'은 원래 '한+안음'에서 온 말이다. '아름'은 원래 '안음'에서 온 말로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의 의미이다. 그리고, '한'은 '크다'는 뜻이니, '한아름'은 '크게 팔을 벌려 만든 둘레'를 의미한다.
참고로 '한'은 '칸(汗, khan)'에서 온 말이라는 게 유력하다. '칸'은 위대한 왕이나 지도자를 의미하는 말인데, '칭기즈 칸'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이 쓰인 말은 '한아름'외에도 '한숨', '한강', '한길', '할아버지', '할머니', '황소(한소)'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쓰였다.
다만, '아름답다'가 '안음답다'에서 왔다는 해석은 문헌적인 근거는 약하다. 하지만 이 해석은 현재의 우리 사회의 갈등과 관련해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아름답다를 '안음+답다'가 결합한 것으로 보면,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말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품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어둠을 몰아내는 '빛'도 '전자'와 '자기'가 서로 얼싸안을 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얼싸안고 하나가 되는 상태'에서 비로소 가장 아름답고 밝은 빛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답다'는 말은 나와 다른 상대방을 포용하고 얼싸안아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이외에도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은 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크게는 위와 같이 두 개의 견해만 살펴보았다.
아름답다는 것은,
첫째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기다움이며,
둘째는 그 주체성을 바탕으로 타인을 넉넉하게 안아주는 포용이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독립된 인격체로서 살아가며 타인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시를 하나 소개한다.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