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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06. 2021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으나 있는 줄도 몰라 팔리지 않아

아내가 직접 차를 몰며 홍보 마케팅에 성공하다!

그는 1844년, 독일 카를스루(Karlsruhe)에서 철도 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두 살이 되던 해, 폐렴을 앓던 아버지가 죽었고, 살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하숙업으로 가계를 꾸리며 아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사진과 시계 등 기술 분야에 흥미와 소질을 보였다. 13세 때 처음 본 내연기관은 그의 인생을 바꿨고 그때부터 그는 직접 ‘움직이는 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꿈을 키우며 고향의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학업을 마친 뒤, 같은 지역의 기계 산업 회사에서 2년간의 실무 교육을 이수한다. 그리고 드디어 만하임 계량기 공장의 제도공이자 설계자로 일하며 엔지니어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나 공장의 제도공은 자신이 꿈꾸던 방향과 크게 달랐다. 결국 그는 자신의 경력을 순탄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1868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잃고, 교량 건축 전문회사에 입사했으나 그곳에서마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제철 회사에 들어가지만 그마저도 짧게 근무하여 회사 부적응자가 되어버려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1871년 엔지니어였던 아우구스트 리터(August Ritter)와 힘을 합쳐 독일 만하임에 첫 회사를 설립한다.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독일의 기술자이자 기업인으로, 저 유명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설립자인 칼 프리드리히 벤츠 (Karl Friedrich Benz)의 이야기이다.


그는 수평대향 엔진과 내연기관 자동차들을 개발하여 특허권을 얻었다.

1886년 세계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로 특허를 획득한다. 특허번호 37435번.

아울러 세계 최초로 운전면허를 발급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막 자기 사업체를 설립했던 1871년의 그는 아직 업계의 신생아에 불과했다. 회사 설립 이후 그렇다 할 수익을 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업할 때 받은 융자금을 해결하지도 못해 차압까지 들어오는 상황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직접 영입했던 기계 기술자인 아우구스트 리터와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결코 신뢰할만한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괴로워하던 그를 보며, 그의 약혼녀였던 베르타 링거(Bertha Ringer)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곁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당시 18세의 베르타 링거(Bertha Ringer)

낙천적이고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될 성실하고 전도유망한 남자가 사업 파트너로 인해, 또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자신의 결혼 지참금을 미리 카를에게 주는 과감함을 보인다. 비록 거액은 아니었지만 카를은 그 돈으로 사업 파트너에게서 모든 권리를 사들이고, 의사결정권을 확보하여 아우구스트 리터를 해고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녀의 지참금이, 남편도 되기 전의 카를이 스스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1872년 카를 벤츠는 자신의 신생 회사가 다시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녀와 결혼하게 되고, 그녀의 이름은 베르타 벤츠(Bertha Benz)로 바뀐다.


초창기 카를의 사업은 성장은 고사하고 정체를 거듭했다. 주철공장과 기계 작업실은 회사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공구들이 압류되는 지경까지 몰렸다. 카를은 회사의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위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목표로 했던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력원인 엔진이 필수였다. 카를은 2년간의 개발 끝에 1879년 가스 구동방식의 엔진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2 행정기관을 개발하면서 카를은 엔진 속도 조절과 같은,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여러 주요 기술 특허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 자동차의 시동을 걸기 위한 배터리 점화 장치까지도 함께 개발하게 된다.


1882년 카를 벤츠와 베르타 벤츠는 새로운 재정 지원자와 파트너, 은행의 도움으로 회사를 공개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하고 회사명도 만하임 가스 엔진 제작회사(Gasmotoren-Fabrik Mannheim)로 개명한다. 당시 카를의 지분은 5%에 불과했는데, 그가 기술 부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후원자이자 사업 파트너들은, (물론 아직 구경도 못했지만) 완성형 자동차 따위보다는 안정적인 비즈니스인 고정형 가스 엔진 개발에만 매진할 것을 원했다. 결과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파트너들이 카를의 설계에 조금씩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1883년 카를은 또다시 자신이 만든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게 된다.


같은 해인 1883년 카를 벤츠는 사업가인 막스 로제(Max Rose)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슬링거(Friedrich Wilhelm Esslinger)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다시 받게 된다. 덕분에 그해 10월 카를은 만하임에 벤츠 자동차 회사(Benz & Co)와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라이니쉐 가스 자동차 공장(Rheinische Gasmotoren-Fabrik)을 설립할 수 있었다.

최초의 벤츠 자동차 공장

드디어 카를이 자동차 엔진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새 회사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둘 뿐이었던 직원 수는 금세 25명이 되었고, 가스 엔진을 제조하기 위한 면허도 발급받았다.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자, 카를 벤츠는 4 행정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자동차를 설계하기 시작하여, 1885년 2인승 마차에 0.75마력 1기통 4행정 엔진을 달고 차동 장치까지 탑재한 차를 완성한다. 이 차가 바로 첫 번째 삼륜 자동차였다. 이듬해인 1886년 카를은 ‘특허받은 자동차’라는 의미를 지닌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Motorwagen)이라는 이름을 붙여 해당 차량을 공개한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특허를 받는다.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Motorwagen)

카를 벤츠는 자신이 만든 자동차로 특허를 땄고, 공인된 자동차 역사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주인공이 되었지만, 정작 주변의 평가는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대대적 환영은커녕 말이 이끄는 마차가 아닌,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세 바퀴 물건에 대해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냄새난 고물이라며 이웃들에게 손가락질받고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자신이 그토록 오랜 시간과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열정의 산물이 세상의 냉정한 평가와 외면을 받는 것에 카를은 좌절했다. 완벽주의와 소심한 성격 탓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하고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고민만 하던 카를에게 용기를 준 것은 바로 그의 아내 베르타 벤츠였다. 자칫했으면 역사의 뒤편에 가려졌을지도 모를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바로 그의 아내가 그를 위해 나선 그 사건 덕분이었다.

1888년 8월의 어느 날 이른 새벽, 베르타는, 남편이 깊게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두 아들과 함께 친정에 다녀온다는 짧은 메모 한 장을 남겨둔 채 집을 빠져나왔다. 창고에 간 그녀는, 남편이 소중히 보관해 둔 ‘말없이 움직이는 마차’를 끌어냈다. 위의 사진처럼 자신이 타고 아들들이 조심스레 집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두 아들은 자동차의 시끄러운 엔진을 켜고 절대 순탄치 않은 '무모한' 주행테스트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개발했지만 실용화하지 못하고 남몰래 보관만 하고 있던 남편을 대신해, 베르타는 남편이 발명한 우수한 작품, 가솔린 자동차를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직접 운전을 하고 나선 것이다. 남편 카를 벤츠의 차가 마차를 대체하는 새로운 운송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최초의 자동차 장거리 여행이자 주행 테스트를 감행했다.

당시 주행한 거리를 표시한 지도

그녀가 감행한 여정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만하임(Mannheim)에서 친정이 있던 포르츠하임(Pforzheim)까지, 무려 106km나 되는 먼 거리였다. 당시 도로는 지금과 같이 제대로 포장이 된 도로가 아닌, 말 그대로 비포장 흙길이었다. 딱딱한 나무에 고무를 덧입혀 만든 바퀴는 울퉁불퉁한 길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승차감은 고사하고 엉덩이가 남아나기 어려울 정도였다. 속도 역시 지금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긴 거리를 장시간 운전을 하면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자동차의 핸들은 둥글지만 당시의 핸들은 막대 모양인 데다가 레버식 브레이크가 탑재되어 있어 운전 자체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 더운 유럽의 여름 날씨에 자동차 냉각수는 금세 말라 엔진과열로 멈춰 서기 일쑤였고, 시냇물을 퍼다 부어 냉각수로 사용하고, 연료가 바닥나면 근처 약국에서 솔벤트를 사 와 겨우 기름통을 채우며 그 고행을 지속했다. 당시엔 가솔린(솔벤트)은 약국에서 소독용으로 판매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주유소가 없었음에도 연료조달은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심지어 연료 파이프에 이물질이 가득해 노즐이 막힌 것을 발견하고 머리에 꽂고 있던 머리핀으로 이물질을 빼낸 후 다시 출발하기도 했다. 체인과 브레이크용 가죽이 끊어질 때는 스타킹까지 이용하여 응급처치를 했고, 친정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는 브레이크가 완전히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그 마지막까지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먼저 근처 신발가게에 들러 새 신발을 사서, 닳아 고장이 난 브레이크의 가죽을 대체해서 끝까지 달렸다.

자신의 자동차에 시승한 카를 벤츠

해가 떨어질 무렵 무사히 그녀와 두 아이들은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남편의 만든 자동차를 타고 먼지와 땀범벅이 된 채, 드디어 친정에 도착한 두 아들과 베르타의 얼굴에는 피곤이 아닌 웃음이 가득했다. 그들이 타고 온 처음 보는 요상한 기구가 달리는 내내 마을 사람들의 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했다. 말이 끌지 않고 스스로 달리는 마차가 106㎞나 되는 거리를 달려왔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구경하겠다며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녀의 주행테스트 소식을 나중에 듣고 알게 된 남편 카를 벤츠는 그 누구보다도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에게 확신을 주게 되었다.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도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는 자동차라면 분명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베르타 벤츠(Bertha Benz)의 말년 사진

그의 아내가 직접 운전하며 얻은 경험담은 훗날 그가 자동차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보완하여 더 편리하고 튼튼한 자동차를 만드는 데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됩니다. 나중에야 그녀는 기름이 바닥났을 땐 몇 시간이고 두 아들과 함께 자동차를 밀고 가기도 했다며 고비의 순간을 고백하며 남편의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 무모하지만 당당했던 그녀의 도전정신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카를 벤츠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비판적인 비평가와 무심한 언론의 마음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렇게 베르타 벤츠는 장거리 자동차 주행을 한 첫 번째 인류이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자동차 운전자로 기록에 남게 된다.


카를 벤츠의 자동차로 장거리 주행을 성공한 그녀의 스토리는 전국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회사가 커지고, 생산 시설도 대규모로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그들만의 회사로 승승장구했냐구?

아니.


또 그는 투자자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떠나고 두 아들들도 아버지와 함께하며 계속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고 합병하고 싸우고 결별하는 일을 되풀이하게 된다.

심지어 1924년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자동차 산업도 심각한 경기 침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당시 많은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합병이나 동업의 형태로 변화하는 추세였다. 벤츠 앤씨에 회사 또한 수년 동안 경쟁관계였던 다임러 모토렌 게젤샤프트(DMG; Daimler Motoren-Gesellschaft)와 연합을 단행하기로 합의하고 기술, 영업,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협조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두 회사의 공동 마케팅 활동은 새롭게 설립된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Automobil GmbH) 회사가 담당하게 된다. 바로 당신들이 알고 있는 현재의 메르세데스=벤츠의 탄생인 것이다.

그즈음이 되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이제 마차는 필요 없어! 대세는 자동차지."라고 어느 순간부터 말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느꼈겠지만 주인공이 카를 벤츠인지 베르타 벤츠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둘을 분리시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은 둘이었기에 그만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이지, 각자만의 삶으로 독립되어있었다면 결코 이런 시너지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시대가 각박해져 연애를 하는 젊은이들도 줄어가고 결혼은 고사하고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도 심각해져만 가고 있다고 한다.


결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태어나서 머리가 클 때까지 완전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남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융합되고 서로 이해가 척척되며 양해하고 행복하게만 사는 것은 감성적으로는 물론이고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통해 완성된 하나의 온전한 부부라는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카를 벤츠 부부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성향이 정 반대였던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며 서로 간의 최대 시너지를 발휘한 이상적인 사례였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연애는?

당신의 결혼생활은 어떠한가?


자신이 피곤하다고, 다른 일 때문에 짜증 난다고 상대에게 그 화를 옮기기 일쑤이고

서로 각자의 집안 얘기가 나오는 것만으로 털까지 잔뜩 곤두서서 신경전을 벌이느라 쓸모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감정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차피 결혼은 먼 일이고, 그저 연애일 뿐이라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내가 편하고 여유 있을 때만 하는 것이고, 내가 필요할 때 없거나 내가 필요로 하는 경우에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그저 파트너 체인지를 알아보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골똘히 연구하고 인생을 바쳐가며 노력할 때,

내 곁에 누군가 있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꿈을 이해해주고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늘 있어왔고 같이 지냈기 때문에 소홀해왔을 당신의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저 '의리'로 산다는 객쩍은 농담을 하면서도

당신은 당신과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에게 얼마나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해 봤는가?


당신의 꿈을 위해, 혹은 함께 꾸는 꿈을 위해 선뜻

함께 배에 올라 그 수많은 폭풍우의 밤들을 더불어 지나쳐 오면서

당신이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랑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받아왔는가 말이다.


당신이 실패했다고 깡소주 들이키며 쓴 눈물을 삼킬 때, 당신의 속이 상할까 싶어 가만히 안주라도 먹으라며 접시를 내미는 상대에게

회사 일로, 가족들의 일로 당신이 속상하다고 울부짖을 때

아무런 말없이 당신이 기대어 펑펑 울 수 있게 가만히 안아주던 그 상대에게


그대가 있어, 

내가 실패하고 좌절할 일이 있어도

그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를 믿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반드시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보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일어서라.


당신이 혼자였을 때는 쓰러지기가 쉽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쓰러지기도 어렵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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