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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13. 2021

슈퍼맨이 전신마비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도...

결코 슈퍼맨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1952년에 뉴욕의 뼈대있는 최상류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진외조부(아버지의 외조부) 프랭클린 돌리어(Franklin D'Olier)는 미국 재향군인회(The American Legion) 초대 회장을 지냈고, 프루덴셜 보험 사장과 이사회 의장, 종신 이사를 역임했다. 친할아버지 리처드 헨리 리브(Richard H. Reeve)도 장인의 뒤를 이어 프루덴셜 생명보험 최고경영자를 25년이나 지냈었다.


부친 프랭클린 돌리어 리브(Franklin D'Olier Reeve)는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러시아 어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지낸 학자였다. 모친 바버라 피트니 램(Barbara Pitney Lamb)는 언론인이었는데, 그녀의 친조부는 연방 하원의원과 대법관을 지낸 말론 피트니 4세(Mahlon Pitney IV)였다.

그러나. 그가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인 1956년에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양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이후 명문 코넬 대학교로 진학하여 영어와 음악 이론을 전공했다.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뜻을 두고, 15세 때에 연기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만 연기자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한 우려를 했던 부모님이 승낙하지 않아 일단 대학교를 마치기로 한다. 코넬 대학교로 진학한 것도 사실, 일단 부모와 떨어져 연기 관련 일을 해보려는 이유가 컸었다고 한다.  


대학 재학 중에는 영국 글래스고, 프랑스 파리 등을 돌아다니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유럽 경험을 거치며 연기에 더욱 조바심이 난 나머지 졸업 이수 요건은 줄리어드 스쿨 연기학교에서 마저 채우기로 하고, 1973년에 줄리어드 스쿨에 편입하여 연기를 배웠다.


1975년에 졸업을 하고 브로드웨이에서 힘겨운 무명 시절을 거쳤다. 이때 그는 너무 바빠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의사에게 제대로 육류를 섭취하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나중에는 출중한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 A Matter of Gravity>에서 케서린 헵번의 상대역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무명시절을 단숨에 끝내줄 기회가 그에게 찾아온다.

1978년에 그 유명한 영화 <슈퍼맨>의 주연을 맡게 된다.

코믹스 사상 유일무이 부동의 1위 캐릭터 슈퍼맨에 가장 가까운 연기를 했던 사람, 1978년 시작되어 근 10여년간 총 4편의 시리즈를 통해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이름보다 슈퍼맨으로 더 많이 불렸던 남자, 본명 크리스토퍼 디 오라이어 리브(Christopher D'Olier Reeve)의 이야기이다.

 

사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제작을 기획하고 준비할 당시 <슈퍼맨>의 주인공 역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워너브라더스사에서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이는 블록버스터 영화였기 때문에, 당연히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주인공 물망에 올랐었다.

로버트 레드포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워렌 비티, 제임스 칸, 버트 레이널즈, 닉 놀테, 라이언 오닐, 제프 브리지스, 존 보이트, 심지어 몸짱의 대명사,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유력한 후보였다고 한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하고 슈퍼맨의 큰 체격에 어울렸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강력한 후보였지만, 정작 본인의 스케쥴이 너무 꽉 찼다는 이유로 고사하였고, 제임스 칸은 쫙 달라붙은 우스꽝스런 슈퍼맨의 복장이 부담스러워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디션을 보러온 크리스토퍼 리브의 모습에 관계자들은 눈이 번쩍 뜨였다. 큰 키에 푸른 눈, 지적이고 핸섬한 외모는 원작의 슈퍼맨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물론이고,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탄탄한 연기력도 장점이었다.

슈퍼맨 전, 슈퍼맨, 그리고 말년의 모습

캐스팅 당시 리브는 194cm에 70kg대의 깡마른 몸매의 소유자였고, 슈퍼맨치고 몸매가 너무 초라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짜 근육 패드라도 붙이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는 거절하고 몇 달 동안 정말 목숨을 걸고 헬스클럽에서 살면서 벌크업을 하여 진짜 근육을 몸에 장착하고 나타났다.


하지만 더 주목받았던 것은, 슈퍼맨과 싱크로율 100%의 외모보다 리브의 탄탄한 연기력이었다.

얼굴에 점 하나 찍는다고 전남편도 못 알아본다는 황당한 설정에 해당하는, 안경 하나 쓰고 벗는 것으로 구분을 두었던, 어벙한 클라크 켄트와 당당한 슈퍼맨의 1인 2역 연기를, 그는 명실공히 ‘연기력’만으로 커버해낸다.

그가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보면 목소리 톤부터 자세, 평소 말하는 습관, 웃는 모습까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을 표현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리브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당시로선 센세이셔널했던 CG 기술, 화려한 조연진 등에 힘입어 영화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연이어 제작된 <슈퍼맨 2>(1980), <슈퍼맨 3>(1983), <슈퍼맨 4>(1987)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슈퍼맨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며 '슈퍼맨=크리스토퍼 리브'라는 공식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의 영향으로 심지어 원작 <슈퍼맨 코믹스>의 슈퍼맨 얼굴 생김새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가 슈퍼맨으로 나오기 전 1960년대 슈퍼맨을 검색해보면 슈퍼맨의 얼굴은 현재와 많이 다르게 그려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작화마다 다르지만, 25년이 넘게 현재에서도 코믹스에서 슈퍼맨의 외모는 항상 그의 외모와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와 매우 닮은 형태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둠스데이 클락> 등을 맡은 게리 프랭크의 작가가 리브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제작비 절감과 감독 교체 등으로 슈퍼맨 시리즈는 갈수록 작품성이 떨어졌고 <슈퍼맨 4>는 흥행 면에서도 참담하게 실패하고 만다.


잘 나가던 영화가 시리즈를 거듭하다가 흥행 실패한 정도가 무슨 좌절이고 실패냐고?


아직 그의 실패와 좌절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슈퍼맨으로 역할이 고정되어 연기생활이 어려웠을 것 같은 그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은하수> 같은 로맨스 영화는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슈퍼맨> 시리즈 중간에 제작되어, 마이클 케인과 주연으로 같이 나와 양면적인 성향을 가진 소시오패스를 훌륭히 연기한 <죽음의 게임(Deathtrap)>(1982)은 미국에서 제법 성공을 거두기도 하는 등 <슈퍼맨> 외의 흥행작들도 제법 있었다.


<보스톤 사람들(The Bostonians).(1984)과 같은 독립영화들과 각종 연극에 참여하는 등 여러 장르에 도전해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각종 시상식에서 12차례 노미네이트 되었고 수상만 8차례나 했다.

정작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건은 영화가 아닌 승마장에서 1995년 5월 27일, 일어났다.

그가 승마 경기 도중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된 것이다. 승마 경험도 많고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췄음에도 부상은 심각해서, 그는 전신 마비를 선고받고 목 아래를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호흡조차도 기계에 의존해야 했으니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심한 고통에 자살조차 자신이 할 수 없던 그는 아내에게 총을 가져다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남은 희망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좌절하고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렇게 그는 진정한 슈퍼맨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노력과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의료진의 치료에 힘입어 그는 다시 일어섰다.

꾸준한 재활훈련 끝에 리브는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도 30분 정도는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정도로 호전되었고, 죽었던 감각이 어느 정도 되살아나 따뜻함과 차가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크리스토퍼 리브 재단(Christopher Reeve Foundation)'을 설립해, 자신과 같은 마비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사회활동에도 활발하게 참가하였다. 리브는 세계 곳곳을 돌며 강연을 했고, 미국 마비 환자 연합(American paralysis Association)의 대표와 국제 장애인 협회(National Organization on Disability)의 부대표도 맡았다. 이런 분야에 대한 리브의 공헌은 상당한 효과가 있어, 척수 손상과 관련된 의학적 연구가 급격히 활성화됐을 뿐만 아니라 척수장애로 인한 전신마비에 대한 사람들의 사회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현실적인 슈퍼맨 활동에 힘입어, 그는 1996년 8월 26일자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리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작가로도 활동해 'Still Me'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배우로서의 활동에도 성공해, 영화 주연부터 TV 드라마 카메오 등으로 활동한다. 케이블TV 영화 <황혼 속으로(In the Gloaming)>(1997) 제작 때는 직접 메가폰을 잡았고, 1998년에는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 리메이크작 <이창>에도 출연한다.

 

사고가 난지 1년도 되지 않은 1996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타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단순한 환호가 아닌, 단지 그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1분 넘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몇몇 쟁쟁한 배우들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s://youtu.be/ffSy3-PJ5QI

1997년에는 에미상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라스커 상(Lasker Award)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인터뷰 도중 왼손 손가락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진정한 슈퍼맨으로서의 기적을 보여주며 전세계 팬들에게 그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2004년 10월 9일, 뉴욕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다음날 숨을 거뒀다. 향년 그의 나이 52세의 젊은 죽음이었다. NBC 투데이는 그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를 ‘영웅(hero)’이라고 지칭하여 슈퍼맨으로서의 그의 치열한 삶을 추모했다.

2년뒤 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줬던 그의 아내 데이나 리브마저 45살의 나이에 폐암으로 그를 따라가게 되면서 남겨진 그의 자녀들이 고아가 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하지만, 줄리어드 스쿨 연기학교 동문이었던 그의 절친 로빈 윌리암스가 그의 자식들을 입양하여 맡아주는 진정한 우정을 보여준다.

 

그의 팬들은, 슈퍼맨 마크 모양의 꽃다발을 만들어서 그의 영전에 바치고, 그를 진정한 슈퍼맨(The Real Superman)이라고 불렀다. 죽을 때까지 슈퍼맨다운 삶을 산 그에게 어울리는 찬사였다.


당신이 전세계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영화배우였다면,

그런 당신이 갑작스런 사고로 얼굴 이외에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가 왔다면,

당신은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아니, 자신을 수습하는 것을 넘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겠다며 재단을 세우고 전세계로 강연을 다니고 다시 연기까지 시도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 마비이지, 호흡보조장치가 없으면 숨도 스스로 쉴 수 없는 지경이었단 말이다.

자신의 의지로 호흡을 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언제 호흡보조 장치가 고장이 나거나 떨어질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이들을 위해 활동할 수 있을까?

그가 슈퍼맨 역이 아닌, 슈퍼맨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실패와 좌절이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가?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이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의 목숨을 걱정할 정도인가?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신다.

죽고사는 일만 아니라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건 그저 위로나 격려가 아니다.

그 분들의 사람의 연륜에서 나오는 절절한 경험담이고 인생담인 것이다.

 

아직 젊은 나이에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강다리로 투신하겠다고 달려가고

연탄 피우고 같이 죽자며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찾아 자살 동지들을 만들고

죽지도 못할 걸 알면서 손목을 긋고

수면제를 온통 다 털어 넣는 이들에게 말한다.


죽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로 총조차 잡지 못했던 슈퍼맨 리브는,

심장마비로 52세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아느냐고.

 

죽을 정도의 병이나 사고를 당한 것만 아니라면

당신이 당한 좌절이나 실패쯤

당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당신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당신에게는 그것을 이겨낼 건강이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당신을 걱정하며 지켜봐주고,

당신이 지켜내야 할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지 않은가?

 

일어서라.

여기는 당신이 풀썩 쓰러져

아직 피어보지도 않은 당신의 인생을 마감할 포인트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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