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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08. 2024

한국인은 왜 호칭에 그렇게 민감한가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6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93          


  ‘호칭은 관계를 설정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어떤 호칭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말이죠. 사회학에서 말하는 인간관계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연상의 누나를 내 여자라고 생각한다며 ‘너’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되시겠습니다. 


  왜 한국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다 말고 뜬금없이 호칭이야기를 꺼내는지 황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죠. 한국인만큼 호칭에 민감한 민족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가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상대방이 나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 그리고 내가 상대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를 통해, 단순히 관계의 설정을 떠나 나의 감정상태까지 티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이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희화회되어 묘사되었던 표현방식 중에서 “우리 배우님~! 들어가실게요~!”라고 외치던 말은 그러한 호칭이 얼마나 한국인들에게 일반화되어 어색하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병원에 가면 환자를 부를 때, ‘~님’을 넘어 ‘환자분~’이라고 호칭하는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씨’라는 호칭이 존칭 같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이 상사나 윗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무언의 룰이 정해져 버려, 한 어린 여배우가 나이가 많은 선배에게 ‘~씨’라는 호칭을 쓴 것만으로도 싸가지가 없는 무개념녀로 찍혀버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생각 없이 사용하고 듣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법원에서 판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원고 @@@’라고 ‘~씨’라는 호칭조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를 변호사기 위해 나온 어린 변호사에게는 ‘변호사님’이라고 존칭을 보입니다. 배울 만큼 배워 판사자리에 오른 자들이 그런 호칭을 써도 되는 걸까요? 


  참고로 따로 존댓말이 없다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영어에서도 고급영어에 들어가면 너무도 당연히 상대에 대한 극존칭과 존댓말은 존재합니다. 특히 현대 미국식 영어의 기틀이 되었다고 하는 영국식 영어의 표현들은 아직도 미국의 상류사회에서 상류층을 대할 때는 따로 접대하는 이들이 언어교육을 받을 정도로 존댓말에 민감한 편이죠.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 호칭에 민감할까요?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인들에게 호칭은 상황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존재합니다. 언니, 이 과장님, 제수씨, 처제 등등 분명히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따라 그 사람의 역할을 판연하게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세계적인 보편성에 의거한 호칭의 다양성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이 설명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민감한 ‘호칭’은 본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직이나 상황에 따른 책무나 위치로 인해 변경되는 것이 아닌, 그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그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가를 통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한국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국어를 처음 배운 외국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씨’라고 부르는 어색한 모습을 보면, 한국인들을 웃으며 말합니다. “친구끼리는 ‘~씨’라고 부르지 않아. 그냥 이름만 불러.” 그런데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선배의 이름을 그냥 불렀다가 상황이 어색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한국어는 도저히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라고 좌절하고 맙니다.

  예컨대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치트키처럼 너무 남발하여 이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만 호칭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밖에 없다고들 합니다. 정치인, 전문직(의사, 법조인), 그리고 정말로 가르치는 직업인 사람(교수 혹은 교사)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개나 소나 선생님입니다. 후술 하게 되겠지만 한국인의 삐뚤어진 관계성에서 나온 결과물인데요. 잘 모르는 상대방에 대해서 올리는 호칭으로 어느 사이엔가 전락해 버린 호칭이 되어버린 거죠. 그 주범은 바로 공무원들입니다. 누가 최초에 그따위 매뉴얼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민원인을 대상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겁니다.


  이것은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간의 호칭에도 극명한 대립양상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사에게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도 간호사에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거나 어색해합니다. ‘간호원’에서 ‘간호사’로 호칭이 변경된 것도 이러한 한국의 호칭문화가 일종의 계급까지 형성하면서 벌어진 촌극인데요.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처럼 ‘사’ 자가 전문성을 갖는 이름이라면서 ‘간호원’이라고 불리던 호칭이 그들의 멸칭이라면서 ‘사’ 자를 붙여달라고 했던 웃픈 촌극이었던 것이죠. 


  아저씨와 아줌마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멸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하철에서 ‘아줌마~!’라고 언성을 높이게 되면 듣는 아줌마는 그것을 멸칭으로 듣습니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본래의 멸칭이나 욕설이 아닌데도 말이죠. 식당에 가서 ‘식당 아줌마’라고 부를 때 나오는 고기의 양과 ‘이모~!’라고 불렀을 때 나오는 고기의 양이 달라진다고 하면 이해가 좀 빠를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호칭에 민감하게 된 것일까요?

  이것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원인들이 뒤엉켜있는데요. 뒤에서 다루게 될 한국인들이 나이에 왜 그렇게 민감하고 가장 먼저 나이를 확인하는지에 대한 이유와도 아주 긴밀한 영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부르는 호칭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서두의 설명과 같이, 자신이 그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 것은 이후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그 호칭을 듣게 될 사람들에게 서열관계는 물론이고 입장차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두 가문이 만나는 자녀들의 결혼의 경우, 사돈이 될 사이의 두 자녀의 아버지들이 서로를 호칭할 때, ‘사돈’이라고 하는 것과 나이나 학연을 통해 ‘선배님’이라고 부르느냐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야!’라고 부르느냐에 따라서 입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한국인들은 일종의 암묵적 사회룰이라고 동의한 것이죠.


  이것은 서열을 정해야 모든 것이 정해지는 잘못된 유교문화의 잔재이기도 하거니와 서열이 정해지면 그것에 따라야만 했던 일본 식민지 문화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호칭이 서열주의를 강요해서 업무상 자유를 강조한다면서 직장 내에서 모든 이들의 호칭을 ‘~님’이라고 직급호칭 파괴제도라는 것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를 도입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원래의 직급호칭제도로 회귀한 기업이 90%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이 뼛속부터 가지고 있는 관계성에 근거한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한국인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호칭을 편하게 하는 외국문화에 낯설어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러한 인식이 하루아침에 쉽게 바꿀 수 없는 오래된 문화적 요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어에서 상대방을 지칭할 때 ‘제가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는 사실 오늘의 주제와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의도는 아니지만, 차라리 한국인들의 복잡한 호칭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묻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냥 편한 대로 부르세요.’라고 하는 한국인의 관계성이 농후한 대답을 듣는 순간, 그것은 ‘니 멋대로 부르라는 게 아니라 정말로 민감하게 잘 골라서 선택해야 할 거야.’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한국어 최상급 수준에 해당하는 난해한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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