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7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94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만치 특정할 수 없는 그 어느 시절부터 한국에서는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향을 분석하는 혈액형별 분석이라는 묘한 감별법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너무도 일반화되어 있어 누구나가 알고 있을 정도로 해당 혈액형의 특징들을 분석해 내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죠.
A형은 소심함의 대명사이고, O형은 다혈질의 대명사이며, B형은 바람둥이의 표본이고,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에 제멋대로인 성격이다, 따위의 고정관념이 바로 혈액형별 분석이 사람들에게 퍼지며 고착화된 고정관념입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전 인류의 성향은 크게 4가지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물론 주먹구구식으로 그렇게 따질만한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특성들을 4가지 특성으로 나누고 세부적인 디테일로 나뉘는 것인지 그렇게 비판할 것만도 아니라고 옹호하는 파들도 있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 년 전 그러한 혈액형 분석에 대해 의문을 갖고 제대로 근원부터 파헤쳐 정확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가지고, 혈액형별 분석을 장난식으로 퍼뜨리거나 일본책이나 잡지를 적당히 베끼는 짓은 하지 말라며 한국의 모든 여성지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연재를 했던 발검무적이라는 분도 계시긴 했습니다.
https://brunch.co.kr/@ahura/312
https://brunch.co.kr/@ahura/406
실제로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도 주목해 왔던 사실이긴 합니다.
1900년 오트스리아의 병리학자, 칼 랜드스타이너 박사가 혈액형이라는 존재를 발견한 이래로(참고로, 그는 이 발견으로 1930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혈액형이란, ‘적혈구 표면에 존재하는 항원의 종류에 따라 분류되는 혈액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존재가 발견된 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 존재가 드러내는 성향에 대해서 전부 알아내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혈액형은 4종류만 있지 않습니다. 무려 44가지 종류가 있는 것으로 학계의 상식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유전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온 이래, 자식이 부모의 성향이나 외모를 닮는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과학논리의 차원에서 보자면, 혈액 역시 멘델의 법칙에 따라 부모로부터 유전됩니다. 그것을 소위 ‘혈액형 유전원리’라고 합니다.
ABO 식 혈액형은 상염색체에 위치하는 A, B, O 유전자에 의해 결정됩니다. A, B, O 유전자는 대립 유전자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대립유전자란 같은 유전자좌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의미합니다. A형과 B형은 0형에 대해 우성이며, A형과 B형 사이에는 우열관계가 없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혈액형이 성격과 매우 밀접한 유관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혈액혈병 분석을 쓰는 글마다 언급되는 ‘과학적 근거는 딱히 없습니다.’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뜬금없이 과학상식시간도 아닌데 한국인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왜 생물학수업을 하는지 머리가 아파지시나요? 요컨대, 전 세계에 알려진 이와 같은 공통적인 사실이 존재함에도 왜 굳이, 한국인들이 그 혈액형 분석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하기 위해 기초학습을 진행한 것이었으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프랑스의 여성심리학자인 레옹 불 델은 1960년에 출간한 <혈액형과 기질>이라는 책에서 혈액형별 성향에 대해서 다양한 특성을 분류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리한 바 있습니다. 정작 이 주장은 당시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후 일본에서는 이 이론이 대유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1927년’ 후루카와 다케지라는 이가 이러한 이론을 정립(?)한 이후 상당한 붐이 일어났고, 프랑스의 이론으로 그것을 일본에서 인용하며 탄력을 받아, 1970년 방송 프로듀서였던 노미 마사히코가 혈액형별 성격과 관련한 책을 출간하면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통해 일본에서는 점성술과 더불어 심리분석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됩니다.
눈치채셨나요? 제가 위의 글에서 굳이 작은따옴표를 연도에 찍은 이유를? 일본이 혈액형별 성향분석을 하고 그 이론을 정립하게 된 시기가 일제 식민지 시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식적 문건에 혈액형별 분석이 발견되는 최초 지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22년 7월 <동경의사신지(東京醫事新誌)>에 대규모 조선인을 대상으로 ABO 식 혈액형 분류 연구가 처음 이루어졌다며 나온 것이 최초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연구 보고서의 저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桐原眞一) 교수와 그의 제자였던 백인제(白麟濟)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당시 연구조사의 대상은 조선총독부의원의 외래환자와 병원직원, 경성감옥 수감자 등 조선 내 일본인 502명과 조선인 1천167명이었다고 전합니다.
명색이 연구이니 연구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연구팀은 이 보고서를 통해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그야말로 얼척없는 결론에 귀결하죠. 이것이 이른바 당시 일본이 독일을 본받아(?) 끊임없이 집착했던 우생학(優生學)의 실체입니다.
당시 일본 연구자라는 이들이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랍시고 이런 황당한 연구결과를 내놓았을 리가 없죠. 그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독일의 힐슈펠트(Ludwick Hirschfeld)라는 학자가 1919년 의학전문지 <랜싯(The Lancet)>에 게재했던 <인종별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라는 조사결과에 근거했다고 적시되어 있는데요.
해당 논문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진화한 민족일수록 B형보다 A형이 많다는 생각으로 ‘인종계수’라는 수치가 처음 등장합니다. 그 인종계수는 영국인(4.5), 프랑스인(3.2), 이탈리아인(2.8), 독일인(2.8), 오스트리아인(2.5) 등의 순으로 높다고 나오는데요. 유색인종과 식민지에 주 인종층이었던 흑인(0.8), 베트남인(0.5), 인도인(0.5) 등은 인종계수가 터무니없이 낮았다는 냄새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이것은 과학적인 연구도 뭐도 아닌, 그들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얼토당토 한 논리를 뒷받침할 목적으로 조작된 헛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형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시작은 바로 이러한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논리박약의 저급한 의도가 깔려 있던 연구(?)였다는 거죠.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정말로 사람을 분류하고 그 사람을 분석하는 유사과학으로 발전해 왔고, 일본의 잡지나 책 중에서 재미있으면 그대로 베껴서 옮겨서 양산하던 그 시절(당시 드라마 국장이 드라마 기획을 해보라면서 제가 건네주었던 것은 일본 드라마의 비디오테이프였습니다.)에 대중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학문적인 연원 따위는 필요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에 혈액형에 열광한다는 주장은 결코 아닙니다. 혈통에 높은 가치를 두는 같은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높은 자긍심이 강해서 혈통에 대한 뿌리 깊은 집착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혈통과 혈연에 대한 한국인의 독특하리만큼 강한 집착으로 연결되는데요. 이것은 족보, 혈통, 가계 등등이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강조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편 가르기를 통한 전형적인 편먹기 양상이라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보다 명확한 상황을 선호하려는 경향, 또 관계성에 집착하여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모두가 공감할만한 스몰토크의 주제로 활용되는 점등 복잡다단한 이유로도 설명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뒤에서 설명해 나가도록 하지요.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