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8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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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들 하지만, 40대 이상, 5,60대 한국인들에게 생일을 물어보면, 음력으로 생일을 지낸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곤 했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소한 태양력(그레고리우스력)이 아닌 음력이 아직까지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지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양력을 쓰긴 하지만, 여전히 점집에 점을 보러 가서 사주를 말할 때면 만세력으로 환산을 하게 되기 때문에 ‘~월생’이라는 의미는 당연히 음력을 의미합니다.(물론 말하는 당사자들은 음력생일을 모르고, 신세대 점쟁이도 그것을 몰라 만세력 어플을 사용할지라도 말이죠.)
사실, 대표적인 음력의 사용은 생일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움직인다는 민족의 대명절 설과 추석은, 모두 정월초하루와 한가위를 의미하는 음력 날짜로 지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두 명절을 필두로 한 음력의 사용이유는 농경사회의 가장 기반이 되는 생활 기준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음력이 농경사회의 생활기준이 되었던 까닭은 매달 형태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날짜를 헤어리기가 쉽고, 보름과 그믐에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농사 및 어업에 활용하기가 매우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달의 인력 변화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해서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의 차이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고등 포유류에게 생리현상이 29~30일 간격으로 나타나게 해 ‘월경(月經)’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게 했습니다.
이후, 중국의 한(漢) 나라 때, 로마제국의 태양력이라는 과학지식이 전해지게 되면서 그에 자극받은 중국은 19년마다 7번의 윤달을 포함한 역법을 확정하여 기존 음력에서 불일치하던 부분을 개선하여 이른바 ‘태양태음력’이라는 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6세기에는 태양력의 장점을 더한 24 절기를 만들게 됩니다. 즉, 입춘, 춘분 등 24 절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음력기준이 아닌 365일을 보름씩 쪼개어 표시한 양력의 절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본래는 새해의 첫날이 지금과 달리 정월대보름이었던 오리지널(?) 음력이 기준점이 초승달로 바뀌게 되면서 정월초하루를 새해의 첫날로 지정하게 된 것이 동양의 설날, 정월초하루의 연원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서양에 양력을 최초로 개발하여 로마에 가르쳐준 이집트에서는 오히려 이슬람을 정복하고 나서 음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음력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술했던 ‘태양태음력’과는 다른 이슬람 음력입니다.(참고로 이슬람인들이 굳이 오차가 그렇게 심한 음력을 고집하며 사용하는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던 당시 유대인들이 윤달을 활용하여 보완된 태양태음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반발하는 의미로 아예 윤달사용을 금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왜 농경사회의 생활기준이었는지 조금 눈치를 채셨나요? 실제로 과학계에서도 본래의 음력이 가진 단점을 윤달로 보완하고 24 절기까지 넣은 ‘완성형 태양태음력’이 양력(그레고리우스력) 보다 훨씬 과학적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한국인들이 더 합리적인 이유에서 음력을 사용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 양력을 쓰고 있을까요?
이 질문은 크게 두 가지 원인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단순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앞의 이유로 인해 생긴 보편성이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단순히 음력이라고 부르는 ‘완성형 태양태음력’은 이름 그대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모두 계산하였기 때문에 매우 과학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운용하는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큰 달과 작은달을 구분해야 하고, 24 절기와 달의 움직임에 따라 윤달도 미리 계산해서 달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때문에 천문학자들이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관측하면서 계산을 통해 미리 해와 달의 움직임을 예측해야만 음력달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모든 이들이 할 수 없는 관계로 일반인들은 이 달력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기조차 힘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편차가 큰 대중들에게 기준으로 삼기 위해서는 단순한 쪽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양력은 보편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보편적인 양력을 강요하면서 한국의 고유문화를 없애겠다며 음력설을 쇠는 것조차 강제한 바 있습니다. 물론 대한제국은 억지로 음력설을 없애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온 수많은 일본인들과 그들에 따르는 이들은 양력설을 쇠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음력설을 쇠는 것이 일종의 저항이고 독립운동으로까지 확대해석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부터 박정희 정부까지 음력설은 본격적으로 쇠퇴합니다. 한국 정부 수립을 주도한 엘리트들은 일제 강점하에 형성된 근대적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진보이고 발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요. 그들에게 음력설은 낡고 정체된 구시대의 잔재였습니다. 그래서 자유당 정권은 총독부가 쓰던 치사하고 졸렬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유신(惟新)으로 근대 일본과의 미래를 따르고자 했던 박정희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연휴’라는 특혜를 사용해 가며 양력설을 권장한 것이죠. 1949년부터 1989년까지, 양력설은 공식적으로 3일 연휴가 이어집니다. 사람을 갈아서 경제를 성장시키던 시절, 연휴는 지금보다 더 달콤하고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7080년을 거치며, 음력설의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음력설은 ‘국풍 81’ 등의 흐름을 타며 80년대 중반부터 부활하게 됩니다. 1985년, 음력설이 국가 공휴일인 ‘민속의 날’이라는 해괴한 날로 지정됩니다. 1989년에는 드디어 3일 연휴로 지정되면서 ‘민속의 날’이 아닌 정식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죠.
한국인의 음력에 대한 사랑은 SNS를 사용하는 신세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012년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인들의 기본정보에 음력 생일을 양력 생일과 함께 표시할 수 있게 하는 전 세계 유일의 기능을 탑재하게 되었다고 공표합니다. 그만큼 생일을 음력으로 계산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유일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같은 동양권이라고 모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양력을 사용하면서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제사를 음력으로 지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민족의 대명절에 가장 큰 가족행사는 차례(제사)입니다. 전 국민의 공통적인 명절이 음력이고 그것을 기준으로 어르신들의 생일과 제사를 치르는데, 그분들이 자신들의 자녀 생일을 양력으로 지낼 리 만무했기 때문이죠.
이미 세대를 거듭하고 제사조차 제대로 지내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문화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희석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님의 생신을 챙기려면 한국인들은 음력캘린더를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 음력을 사용한 생일계산법이 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설과 한가위 명절이 뭘 하는 날인지 잘 모르는 어린 세대들에게는, 그저 세뱃돈을 받고 맛있는 것을 잔뜩 해서 먹거나 긴 연휴가 있어 해외여행을 가는 날로 기억될는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설이나 한가위와 마찬가지라고 자신의 생일만큼은 음력으로 지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음력 달력을 다시 확인하는 귀찮음을 생각하기 전에 왜 한국인들이 음력을 사용했는지 한 번쯤은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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